[맛대맛] 시래기 vs 우거지…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겨울 밥상 풍미 더하는 재료로

서지민 기자 2024. 1. 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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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50)시래기 vs 우거지
강원 양구 펀치볼지역 ‘시래기’
비타민·미네랄 풍부한 건강식
된장국·생선찜에 넣으면 별미
양념 잔뜩 머금어 깊은맛 일품
충남 아산 ‘우거지’
생배추보다 오래 먹을 수 있어
감자탕 등에 함께 끓여 맛 더해
진한 국물 배어 고기와 어울려
알맹이만 귀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부산물인 시래기와 우거지의 맛은 특별하다. 버려질 뻔한 무청과 배추 겉잎은 시래기와 우거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 식탁에 오른다. 그대로도 매력적인 주연일 뿐만 아니라 고기와 함께 요리하면 풍미를 더하는 멋진 조연이 된다. 겨울 밥상을 풍성하게 해줄 시래기와 우거지 주산지를 찾아가 가공과정을 알아보고 이를 활용한 별미도 소개한다.
‘무청’만 잘라 햇볕에 바싹…깊고 구수한 맛 매력 
강원 양구 펀치볼지역에서 건조되고 있는 시래기. 낮에는 햇볕을 받고 밤에는 찬바람을 견디며 맛이 깊어진다.
눈이 소복이 쌓인 처마 밑에 줄줄이 널린 시래기를 보면 정겨운 예전 시골 풍경이 떠오른다. 햇빛과 찬 바람을 맞으며 깊고 구수한 맛을 품은 시래기. 이를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에, 매콤 칼칼한 생선찜에 넣으면 이만한 별미가 없다. 시래기로 유명한 강원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지역에 다녀왔다.

시래기는 무의 줄기인 무청을 잘라 햇볕에 바싹 말려 만든다. 예전에는 김장하고 남은 무청을 모아다가 가지런히 엮어 말려 겨우내 먹었다. 무청은 과거에는 그다지 귀하게 여긴 식재료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가 풍부한 건강식으로 알려져 이맘때만 되면 일부러 찾아 먹는 사람이 늘었다.

제대로 맛이 든 시래기를 먹어보고 싶다면 펀치볼지역을 찾으면 된다. 해안면은 우묵한 지형이 마치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펀치볼이란 별칭이 붙었다. 가칠봉·대우산·도솔산·대암산 등 해발 1100m 이상 되는 높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 지형이다.

20년 넘게 ‘펀치볼시래기농원’에서 시래기를 만들고 있는 지미영 대표는 “무청은 자라며 낮에는 따뜻한 햇볕에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고 밤에는 갑자기 추워져 영양분을 모두 줄기에 축적시킨다”며 “말릴 때도 찬 바람이 분지 안에서 계속 돌아 그 맛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청 중 제일은 시래기무에서 난 무청이다. 일반 무보다 뿌리가 작고 줄기가 연하며 잎이 많은 품종을 통틀어서 시래기무라고 부른다. 여름 작물을 거둔 밭에 시래기무를 심고 60일 동안 키운 다음 뿌리는 버리고 무청만 잘 다듬어 주렁주렁 매달아서 말리면 된다. 햇볕 아래서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가면 차광막을 친 뒤 그늘에서 서서히 맛이 들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질 좋은 시래기를 고르고 싶으면 줄기 두께를 잘 살펴보면 된다. 오동통 실하게 살이 오른 것이 연하고 맛 좋다. 말린 시래기를 뜨거운 물에 푹 삶고 그 물이 식을 때까지 반나절 이상 물속에 그대로 두고 불려 조금의 뻣뻣함도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둬야 한다. 더욱 식감을 좋게 하고 싶다면 겉껍질을 벗겨낸다. 지 대표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집집마다 마당 한가득 시래기가 쌓여 있어 흔하게 집밥으로 해 먹는다”고 말했다.

‘돌모루농가맛집’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다.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은 으레 이곳 대표 메뉴 시래기생선조림을 주문한다. 냄비에 시래기를 깔고 가자미·고등어·황태를 고루 넣어 매콤한 양념에 조려 완성한다. 시래기가 생선 비린내를 잡아줘 깔끔하고 감칠맛이 살아 있다. 양념을 잔뜩 머금은 시래기는 깊은 풍미가 일품이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김춘금 대표는 “생선 살을 큼지막하게 발라내서 시래기로 감싸 맛보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며 “질기지 않고 입에 넣자마자 풀어질 정도로 부드러운 시래기는 양구에서 난 것이 제일이다”고 설명했다. 

시래기를 넣어 만든 생선조림. 생선 비린내는 줄고 풍미는 진해진다.

[시래기 요리] 시래기밥에 간장 양념 쓱쓱 … 입맛 없을 땐 죽으로

◆시래기밥=시래기를 넣어 지은 밥으로 간장 양념을 비벼 먹는다. 경기·충북에서 특히 즐겨 먹는다. 쌀 위에 시래기를 가지런히 얹어 밥을 지은 다음 간장·식초·고춧가루·들기름·통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한끼 뚝딱 해결할 수 있다.

◆시래기나물=시래기 본연의 맛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면 간단하게 간만 맞춰 만드는 나물무침이 제격이다. 시래기를 볶다가 물을 조금 붓고 뚜껑을 덮어 뜸을 들이면 끝이다. 쇠고기 다진 것을 추가로 넣으면 단백질이 보충돼 더욱 좋다.

◆시래기죽=입맛 없을 때 후루룩 먹기 좋다. 시래기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불린 쌀과 물을 함께 넣고 쑤면 된다. 구수한 맛을 위해 된장을 조금 추가해 풀어주는 것도 추천한다.

양구=서지민 기자, 사진=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배추 겉잎’ 삶아 냉동 보관…국물 요리에 넣으면 딱 

충남 아산에 있는 ‘청춘오가닉’에서 우거지 가공이 한창이다. 농가에서 수확한 우거지는 레일을 따라 이동하며 세척되고 삶긴다.

뜨끈한 국물 요리에 들어가 맛을 더해주는 재료가 있다. 바로 우거지다. 우거지는 특정 채소를 뜻하는 게 아닌 푸성귀의 겉쪽에 붙은 잎을 가리키며 ‘위에 있는 것을 거뒀다’는 의미의 ‘웃 걷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주로 배춧잎을 많이 활용한다. 생배추는 상하기 전 먹을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지만 냉동 보관한 우거지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집에서 우거지를 조리하려면 먼저 배추 겉잎을 찬물로 꼼꼼히 씻는 것으로 시작한다. 냄비에 줄기 부분이 먼저 잠기도록 넣은 후 물이 끓기 시작하면 눌러 잎 부분까지 푹 잠기도록 삶는다. 잎을 삶는 물에 소금을 약간 풀면 간이 밸 뿐 아니라 초록색이 더 선명해진다. 5분 정도 끓인 후 우거지를 들어 젓가락으로 말았을 때 뻣뻣한 부분 없이 돌돌 잘 말리면 불을 꺼도 된다. 삶은 우거지에 일어난 하얀 껍질을 손으로 죽 당겨 벗겨내면 더욱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비닐봉지에 우거지와 물을 함께 넣어 얼리면 해동 후에도 얼리기 전의 맛이 그대로 난다. 삶아낸 우거지를 야외에 걸어 이틀 정도 말려 먹기도 한다.

집에서 우거지를 손질하기 번거롭다면 온라인몰에서 냉동 우거지를 구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충남 아산에 있는 ‘청춘오가닉’(대표 조영국)은 1990년부터 2대에 걸쳐 농산물 가공식품을 판매한다. 눈 내리는 한겨울 어느 날, 청춘오가닉 공장에선 우거지를 삶느라 뜨거운 김이 솟아나고 있었다. 커다란 포대에서 우거지를 꺼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쏟아내는 것부터 공정은 시작된다. 강원도에서 아침에 갓 수확한 배춧잎은 먼 길을 달려 아산까지 왔다. 초록색 이파리에서 시작된 우거지는 기다란 벨트 위를 이동하며 세척되고 삶아져 식탁 위에 오를 요리 재료로 거듭난다. 자동화가 됐더라도 시든 잎을 골라내고 삶아진 것을 상자에 담는 건 결국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조영국 대표는 “우거지는 20㎏에 3만원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며 “생배추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냉동인 덕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 식당이나 일반 가정에서 주문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청춘오가닉’에서 생산한 우거지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보러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 ‘정우뼈해장국’으로 향했다. 이곳에선 ‘청춘오가닉’이 생산한 우거지로 우거지감자탕을 만든다. 우거지 맛을 잘 보려고 3000원을 더 내고 우거지를 추가했다. 붉은 국물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돼지 등뼈, 다시 그 위로 수북이 쌓인 우거지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평소였으면 고기로 먼저 향했을 젓가락이 우거지로 갔다. 1시간가량 팔팔 끓인 우거지는 국물이 한껏 배어 있어 씹을 때마다 입 안을 촉촉이 적신다. 우거지를 길게 찢어 야들야들한 고기 한점과 함께 먹어본다. 돼지고기와 우거지의 조화는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게 한다.

[우거지 요리] 된장 풀어 국으로 … 짱뚱어탕에 넣어 담백하게

감자탕 국물을 흠뻑 머금은 우거지. 우거지만 먹어도, 돼지고기와 함께 먹어도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우거지된장국=아이도 어른도 모두 좋아할 만한 국이다. 데친 우거지는 물기를 꼭 짠 후 2㎝ 정도로 썬다. 우거지에 된장·고춧가루·마늘 등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물을 붓고 30분 정도 뭉근히 끓인다. 들깻가루를 풀어도 잘 어울린다.

◆우거지볶음=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밥도둑 반찬.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송송 썬 대파를 넣어 파기름을 낸다. 큼직하게 썬 우거지를 볶다가 된장·다진마늘까지 첨가한다. 우거지가 어느 정도 익으면 참깨를 솔솔 뿌려 고소함을 더한다.

◆짱뚱어탕=전남지역에서 먹는 토속 음식으로 우거지와 짱뚱어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푹 삶아 믹서에 간 짱뚱어를 우거지·된장·고춧가루·생강 등 갖은 재료와 함께 끓여낸다. 추어탕과 비슷한 모양새지만 그보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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