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인생 2년을 건 워홀, 목표 세우고 나를 믿었다"[일문일답]

전선정 인턴 2024. 1. 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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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 해외 살이 관련 유튜브 채널 운영하는 발렌시아
만 30세에 '워홀' 결심한 이유 "죽기 전 덜 후회할 거 같아서"
"믿음 갖고 목표 생각하면 과정 순탄치 않아도 언젠간 도달"
"다양한 삶의 형태 있어…기대 저버리는데 두려워 말 것"
해외 취업·해외살이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발렌시아(장미연·32) (사진=발렌시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전선정 리포터 = "죽기 전 후회한다면 어떤 후회를 하는 편이 나을까 질문했다."

만 30세. 적지 않은 나이에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에 관해 묻자 유튜브 채널 '발렌시아 로그'를 운영하는 '발렌시아(장미연·32)'가 이같이 답했다.

뉴시스는 지난달 8일 영국 케임브리지서 거주하는 해외 취업·해외살이 유튜버 발렌시아를 화상 통화로 만나 그의 콘텐츠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21년 여름, 발렌시아는 '더 넓은 세상에서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했다. 주위의 우려는 적지 않았다. 혹자는 30대에 접어들었으니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2년 거주권이 나와 더 고민이었다. 발렌시아는 혹여 2년을 보람차게 보내지 못한다면 인생을 2년이나 낭비하게 될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주위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기 직전에 나이나 다른 걱정 때문에 워홀을 못 나간 것에 후회하기보다는 차라리 워홀로 2년을 낭비했다고 후회하는 편이 낫겠더라"며 그럼에도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추진한 이유를 밝혔다.

'적성에 맞는 직업 찾기'와 '현지 기업 사무직 취직'은 영국에 오기 전 발렌시아가 설정한 목표였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을 더 즐겁고 열정적으로 다니기 위해 전자의 목표를 설정했다. 두 번째 목표는 영국의 기업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단 하나도 쉬운 일은 없었다. '아티스트적인 도시', '젊음의 에너지가 넘친다'는 기삿말에 끌려 잉글랜드 서남부 도시 브리스톨을 초반 정착지로 택했다. 대학은 넘쳐났지만 일자리는 없었다. 무경력자 발렌시아가 마케팅 직무를 구하는 것은 말마따나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영국은 직장이 있어야 집 구하기도 쉬웠다. 구직이 안 되니 집도 못 구했다. 에어비앤비(Airbnb·숙박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서 구한 임시 숙소에서 한 달을 꼬박 거주했다. 그동안 돌린 이력서 200여 통에 답은 오지 않았다. 결국 런던 동부로 이사를 갔다. 집 렌트비와 생활비를 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한인 회사에 커뮤니케이션 어시스턴트로 입사했다. 현지 기업 사무직 취직이라는 당초 목표와는 달랐다.

"급여도 나쁘지 않았고 사람들도 좋았다. 그야말로 안전지대였다." 발렌시아가 한인 회사 재직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어 그는 "퇴사하면 또 이력서 200통을 돌려야 된다는 생각에 고민을 많이 했다. 구직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했던 터라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렌시아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영국에 운 좋게 추첨(2021년 하반기 기준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신청자 중 200명에게만 추첨·부여됐다)이 돼 온 만큼 목표를 이루고자 퇴사를 결심했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는 말을 실감했다.

마케팅 직군에 다시 도전했다. 노션(메모·문서·프로젝트 관리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웹 기반 플랫폼)으로 만든 자칭 '말도 안 되는 포트폴리오'를 첨부해 이력서 200통 이상을 또 돌렸다. "주방에서 접시 닦기를 하는 한이 있어도 (인턴이) 될 때까지 무조건 (구직)한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동력이었다.

결국 디지털 마케팅 직군에서 인턴십 기회를 얻었다. 인턴을 거쳐 법률회사에 디지털 마케터로 근무했다. 일하다 보니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지금은 다시 언어 관련 경력을 살려 번역 회사에서 새로운 직무(Language Quality Assurance·번역 현지화 점검)를 맡아 일하고 있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두려웠다. 목표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렸는지 두려웠고 천성이 걱정이 많은 편이라 더 그랬다. 그래도 늘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내가 생각하는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관해서 잘 알고 두려움을 잘 안고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이다. 영국에서 생활하며 설정했던 목표를 이루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힘들었는데 되돌아보니 하나씩 해내고 있더라."

발렌시아는 그때부터 스스로를 향한 막연한 믿음, 목표를 생각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엔 목표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웃으면서 밝혔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목표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렌시아는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거나 여건이 되지 않아 못할 수도 있었는데 하루하루 도전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한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발렌시아는 자신을 향한 믿음과 애정으로 다져진 단단한 내면을 자랑스럽게 보이고 있었다.

해외 취업·해외 살이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발렌시아(장미연·32) (사진=발렌시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음은 발렌시아와의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반갑다. 발렌시아다. 본명은 장미연이다. 만 32세다. 만 30세에 막차 타고 2022년 2월부터 영국에 워킹홀리데이를 나왔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아해서 해외 취업·해외살이 관련해서 팁을 공유하고자 유튜브를 시작했다. 싫어하는 건 게으름이다. 게으른데 게으른 걸 싫어하더라. (웃음)"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한 이유는.

"20대 초반에 호주 워홀을 다녀왔다. 한국어 강사로 필리핀에서 잠깐 일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도 해외 생활을 길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워홀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 당시(2021년 하반기)엔 코로나가 한창이라 다른 나라는 국경을 많이 닫았었다. 영국만 거의 유일하게 환하게 국경을 열었어서 영국으로 워홀을 결심했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땠는가.

"대학 전공은 아동학이었다. 졸업 이후엔 한국에서 사무직 일도 해보고 영업직 일도 해봤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한국어 교육을 돕는 봉사도 꽤 했다. 봉사하면서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알게 돼서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고 필리핀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근무했다. 그 후에는 영어 실력이 쌓여서 운이 좋게 영어 학원 강사로 취직해 일을 했었다."

-왜 한국에서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힘들었나.

"잦은 직무 변경이 눈치가 보였다. 전공이 아동학이다 보니 친구들은 보통 교사 등을 하며 안정적인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자격지심에 눈치를 봤다. 또 안전한 바운더리를 벗어나 보자고 생각해서 영국으로 떠난 것도 있다."

"나는 내가 한국 기업 문화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생 신분으로 호주에 워홀을 갔을 때는 영어도 못 하고 해외살이가 처음이라 단순히 “외국이 뭔지 한 번 놀러나 가보자”는 생각으로 나갔다. 그래서 감히 사무직으로 일할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영국으로 (워홀을) 갈 때는 한국에서 직장생활도 했었고 영어를 할 줄 아니까 기업 문화를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나왔다. 일을 해보고 한국의 기업 문화와 영국의 것을 비교하니까 영국 기업 문화가 (나하고) 더 맞는다고 느꼈다."

-한국과 영국의 기업 문화는 어떻게 다르나.

"제일 큰 건 자유로운 연차 사용이다. 야근이라는 개념도 (영국에서는) 거의 없다. 주말에 뭐 했냐고 물었을 때 일했다고 답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와, 진짜 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영국에서는 '개인적인 삶이 없나 보다. 되게 슬픈 삶이다'라고 생각한다. 여기 사람들은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기 삶에 업무적인 스트레스를 안 가져오더라."

"일은 일터에서 끝내고 삶에 들여오지 않으니 자기 일상이 더 여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차 횟수도 다르다. 국가 공휴일 포함해서 연차가 최소 28일이고 많은 곳은 30일까지도 주더라."

-지금 하는 일(Language Quality Assurance·번역 현지화 점검)엔 만족하나.

"그렇다. 근무 형태가 제일 만족스럽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근무'를 한다. 주 2회는 재택근무를 한다. 잠이 많은 편인데 통근 시간에 잠을 더 잔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하루 만족도를 높이더라. 주 3회는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있다. 나만의 시간과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이 함께 있는 근무 형태가 정말 만족도가 높다."

-영국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이 있다면

"피드백하는 법과 받는 법을 많이 배우고 있다.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 의견을 터놓고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회의 때 의견이 없으면 이상할 정도다. 한국인 특징인지 내 특징인지는 모르겠는데 눈에 띄기 싫어서 이야기를 많이 안 하려고 하면 되게 이상하게 보더라. 그래서 피드백이 왔을 때 받아들이는 방식과 피드백을 하는 법, 특히 부정적인 피드백을 표현하는 법과 전달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적성에 맞는 직업은 찾았나.

"진행형이다. 인생 숙제 같다. 뾰족하게 찾지는 못했지만 싫어하는 목록은 정리가 되더라. 요즘은 직업에 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꼭 하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금은 능력이 있는 몇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자신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향인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짧게 해외에 나가더라도 가족들과 가장 친한 친구들이 곁에 없다는 거에 영향을 많이 받더라. 외로움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해외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내가야 하는데 외로움 때문에 멘탈 관리가 안 되면 홀로서기가 힘들더라. 또 이 시간이 소중하지 않느냐. 어렵게 얻은 기회를 잘 보내야 하는데 외로움 때문에 그게 잘 안되면 워홀이 오히려 즐겁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외로움을 타는 편인가.

"나도 외로움을 타다 보니까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한 번 헤어졌다고 영영 이별이 아니고 다시 만날 인연은 만날 거라는 것을 아니까 덜 그런다. 또 내가 집순이 스타일이라서 혼자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외로울 틈이 없기도 하다."

-브리스톨-런던-케임브리지 세 곳의 도시를 거쳤다. 어디가 가장 좋았나.

"브리스톨은 완전 초창기 때 갔다. 영국의 겨울은 좋지 않은데 하필 한 겨울에 가서 너무 우울했다. 그래서 브리스톨에 관해서는 객관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런던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도시다.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성이 돋보인다. 대도시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급하고 양보도 없었다. 또 내가 거주했던 곳이 거칠기로 유명한 런던 동부여서 그런지 더 그랬다."

"케임브리지는 오기 전에 영국 사람들이 너무 예쁜 도시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런던에 비해서 할 것도 없고 시골인가 의아한 도시였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새 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곳이어서 예쁜 도시라는 말이 이해되더라. 런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케임브리지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다."

-로마 여행에서 찍은 숏츠를 봤다.

"로마 여행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다. 로마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갔던 여행지였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 로마로 가는 것을 국내 비행으로 착각하고 공항에 늦게 도착했다. 국제선은 최소 2시간 전엔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40분 전에 도착해서 게이트가 닫혔다. 여행을 취소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자동 출국이 아니라 스캐너 출국을 했더라. 그런데 스캐너에 문제가 생겨 꽤 많은 승객이 비행기를 놓쳤다. 그 승객에 포함돼서 정말 운 좋게 다음 비행기를 무료로 타고 갈 수 있었다."

"로마에 도착했더니 교과서에서만 봤던 건물이 있어서 인상 깊었다. 혼자 여행을 가서 호스텔에 묵었다. 그런데 호스텔에서 열린 이벤트에서 너무 좋은 한국인분들과 외국인분들을 만나서 재밌게 놀았다. 그다음 날까지도 같이 다녀서 지금까지도 되게 기억에 남는다. 연이어서 운이 좋은 일들이 일어났던, 기분 좋았던 여행이었다."

-현재 삶에 만족하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가고 있긴 하지만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목표했던 것도 하나씩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이런 삶을 살고 싶은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거나 여건이 되지 않아서 못 할 수도 있었는데 하루하루 이런 기회와 도전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감사하고 만족한다."

-원래도 감사한 일에 관해 생각했나.

"예전에는 안 그랬다. 안 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서 감사함에 관한 생각을 못 했는데 나이가 들었나 보다. (웃음) 30대에 접어들면서 '누구는 하고 싶어도 못 할 수도 있는데 나는 너무 감사하게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감사한 거구나. 크게 무슨 일 없어도 잔잔하게 보내도 감사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커졌다. 요즘은 이런 마음을 공유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나.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특히 나와 비슷한 삶의 목표가 있고,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향후 계획은?

"정착지가 어디가 될지 결정 못 했다. 기회가 된다면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이어 나가고 싶다. (취업 비자를 받는 것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긴 하다. 안 된다면 또 다른 나라를 찾아갈 것 같다. 아일랜드나 캐나다가 나이 제한을 35살 정도로 올려서 한 번 지원해 볼까 싶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회적으로나 주위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그 기대를 저버리는데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의 형태는 하나도 아니고 정답도 없다. 너무 두려워 말고 내가 나한테 되새기듯이 목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나아가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힘든 순간이 온다. 그 순간마다 스스로를 잘 응원하고 격려하며 나아가면 좋겠다. 본인한테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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