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테트리스 정복, 끝판왕은 13세 소년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2024. 1. 5.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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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분30초 승부 끝에 인간 첫 승리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윌리스 깁슨(13)이 테트리스의 마지막 단계를 깨고 환호하고 있다. 이날 깁슨이 ‘레벨 157’을 달성하자, 게임 진행에 필요한 코드가 더 이상 없어 화면이 정지되는 ‘킬 스크린’ 현상이 나타났다. 게임 화면 가운데 ‘레벨 18’ 표시는 실제 레벨이 아닌 임의의 숫자가 나타나는 일종의 버그다. /유튜브

“맙소사(Oh my god), 맙소사, 맙소사…예스!”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미국 오클라호마주 스틸워터시의 한 가정집에서 고전 닌텐도(NES) 퍼즐게임 ‘테트리스’를 플레이하던 소년 윌리스 깁슨(13)은 게임 화면이 갑자기 정지되자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환호했다. 화면 상단에서 쏟아지던 퍼즐 조각들이 사라지고, 게임 스코어가 ‘999999′로 표시된 채 아무 조작도 불가능한 ‘킬 스크린’이 뜬 것이다. 킬 스크린은 게임 진행을 위해 짜인 코드가 끝나 강제로 작동이 멈추는 일종의 ‘버그(오류)’이다. 이 화면이 떴다는 것은 개발자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게임의 끝을 정복했다는 의미가 된다. 13세 소년이 세상에 나온 지 40년 가깝게 되는 고전 게임의 ‘완전 정복’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순간이었다.

깁슨은 2일 자신의 유튜브에 테트리스 정복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올렸다. 38분 30초 만에 킬 스크린을 마주한 그는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고 했다. 깁슨은 ‘블루 스쿠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프로 테트리스 게이머로, 지난해 클래식 테트리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뉴욕타임스는 “깁슨은 일주일에 약 20시간 테트리스 게임을 한다”면서 “수십 년간 게임 소프트웨어를 해킹하거나,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서야 달성할 수 있었던 (테트리스 정복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고 했다.

◇소련이 만든 가장 성공적 무기

지난 1984년 옛 소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알렉세이 파즈노프가 개발한 테트리스는 전통 퍼즐 게임인 ‘펜토미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사각형 4개로 구성된 다양한 형태의 블록을 맞춰 한 줄씩 지우는 게임이다. 별다른 스토리도, 공략법도 없지만 중독성이 강해 미국에선 ‘소련이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무기는 테트리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개발 당시 옛 소련산 컴퓨터 ‘일렉트로니카 60′에서 작동하던 이 게임은 40년 동안 PC·콘솔·모바일 등 65개 이상의 플랫폼에서 리메이크되며 ‘가장 많은 종류가 만들어진 게임’ 종목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랐다. 테트리스는 40년간 다양한 플랫폼에서 5억장 이상 판매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기도 하다. 2위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인크래프트(3억장 이상)를 크게 앞선다.

수많은 리메이크작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89년 출시된 NES 테트리스다. 깁슨이 정복한 것도 이 버전의 테트리스로, 콘솔에 연결된 컨트롤러(조작기)를 통해 블록을 쌓는 방식이다. 이날 깁스가 기록한 NES 테트리스의 최고 단계는 ‘레벨 157′. 총 1510개의 줄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NES 테트리스는 출시 이후 20년 넘게 레벨 29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단계로 인식돼 왔다. 레벨 29에서 블록이 떨어지는 속도가 최고 수준으로 빨라지는데 블록을 옆으로 움직일 수 있는 속도는 제한돼 있기 때문에 게이머가 원하는 곳으로 블록을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이동키를 한 손으로 빠르게 연타해 블록을 단숨에 움직이는 ‘하이퍼태핑’, 2020년 컨트롤러를 한 손으로 고정한 뒤 다른 한 손으로 뒷면을 연타해 초고속의 클릭 속도를 내는 ‘롤링’ 기술 등이 도입되며 계속 신기록이 세워졌다. 깁스 역시 롤링 기술로 레벨 157을 달성했다.

그래픽=김성규

◇테트리스 아버지의 기구한 운명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비디오 게임을 만든 알렉세이 파즈노프의 삶은 게임과 다르게 순탄치 못했다. 옛 소련 정권이 테트리스 저작권을 멋대로 해외 기업들에 팔았지만, 공무원 신분이었던 파즈노프는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돈도 받지 못했다. 나중에야 이를 알고 자신이 애써 개발한 콘텐츠가 국유재산으로 취급되며 정권의 돈벌이에 활용되는 데 회의감을 가진 그는 소련이 붕괴되자 미국으로 이주했다. 파즈노프는 1996년 네덜란드 게임 디자이너 헹크 로저스와 ‘테트리스 컴퍼니’를 공동 창업하며 테트리스 권리 되찾기에 나섰다. 그 후로 6년이 지난 2002년이 되어서야 파즈노프는 테트리스 저작 권리를 회복했고 이후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기구한 인생은 지난해 애플TV+에서 영화로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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