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일본 노토반도에 기적을…무너진 집 더듬으며 “대답 좀 해봐요”

김소연 기자 2024. 1.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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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이 4일 나흘째를 맞았다.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72시간(4일 오후 4시10분)을 앞두고 이날 피해가 가장 컸던 와지마시에서 소방관들이 무너진 주택 잔해를 살피며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와지마/AP 연합뉴스

“이런 지진은 생전 처음이었어요.”

일본 이시카와현의 중심 도시 가나자와시는 1일 오후 규모 7.6의 지진이 발생한 노토반도 북부에서 100㎞ 떨어져 있다. 하지만 이 도시에도 지진이 할퀴고 간 날카로운 상처는 분명했다. 노토반도로 이어지는 관문인 가나자와의 다카미신마치에선 주택 4채가 도로 일부와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하얀 벽에 녹색 지붕을 한 2층짜리 주택이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옆으로 무너진 모습이 보였다. 인근에 사는 50대 주민은 3일 한겨레에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외출하는 바람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도 5강’이 관측된 가나자와에선 지역의 상징인 가나자와성의 돌담 일부가 무너졌다. 제이알(JR) 가나자와역 한쪽 천장에선 지진에 따른 누수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도로가 쩍쩍 갈라지는 큰 피해를 당했다. 자동차가 갈라진 도로 사이로 빠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진으로 한순간에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노토반도 북동부 스즈시에 사는 히로타(63)는 1일 지진으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동시에 잃었다. 그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악몽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힘겨워했다. 1일 오후 4시10분 갑작스레 닥친 지진으로 집이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건물 더미에 깔린 히로타는 “도와달라”고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이웃에 사는 이가 구조에 나서 목숨을 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편과 시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히로타는 그날 밤 여진의 공포 속에서도 “대답 좀 해보라”며 무너진 집을 향해 울부짖었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주검이 발견된 것은 2일 오전 10시였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꼭 안은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히로타는 “남편이 어머니를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어머니도 외롭지 않으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강진에 따른 사망자는 4일 84명으로 늘어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건물 붕괴 등에 따른 사망 50명)의 피해 규모를 넘어섰다. 사망자는 지진이 직격한 노토반도 북부 도시인 와지마시(44명 사망)·스즈시(23명 사망) 등에 집중돼 있다. 이즈미야 마스히로 스즈시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시내 6천가구 가운데 90%가 파괴됐다. 괴멸적 피해”라고 토로했다. 가장 피해가 큰 와지마시 사카구치 시게루 시장은 3일 저녁 기자회견에서 “지금도 ‘건물 아래 있으니 구해달라’, ‘고립돼 있다’는 구조 요청이 225건”이라며 “빠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진과 같은 대형 재해가 발생한 지 72시간이 지나면 실종자의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 때문에 이 72시간을 ‘구호의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평소 신중하기로 유명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4일 기자회견에서 이 ‘72시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피해 지역에선 무너진 건물 아래 남겨져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실종자들이 있다”며 “72시간이 지나는 오늘 저녁까지 총력을 다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분을 살릴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지진이 발생한 뒤 일본 정부는 자위대·경찰·소방 등 구조인력을 긴급 투입해 158명을 구해냈다. 또 ‘72시간’이 임박한 3일부터는 현장에 투입하는 자위대 인원을 이전보다 두배 많은 2천여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최대 진도 7에 이르는 강력한 지진으로 노토반도의 대동맥이라 불리는 국도 249호선 등 주요 도로들이 끊기면서 구조대의 현장 진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무너진 가옥에 남겨진 실종자를 찾기 위해서는 중장비가 필요한데, 도로 곳곳이 갈라져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급한 대로 자위대원들이 무너진 건물에 더듬어가면서 들어가 실종자를 구하고 있다. 4일 아침이 돼서야 해상자위대 함정들이 와지마항에 닿았고 에어쿠션형 상륙정을 통해 중장비 일부를 반입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와지마시 ‘아사이치’(아침시장)가 화재로 전소됐다. 한 남성이 4일 폐허가 된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사히신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내륙부를 남북으로 달리는 도호쿠 자동차도와 국도 4호를 사용해 연안부로 향하는 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번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반도에 폭이 좁은 도로가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데다, 지진 이후 계속 내리는 비로 낙석과 산사태 위험도 커져 원활한 구조 작업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미 폐허로 변해버린 노토반도 피난민들의 고립도 길어지고 있다. 일상을 버티는 물품 부족도 심각하다. 국토교통성은 3일 근처 항구를 통해 구호물자를 운반하는 해상 수송을 시도했지만, 바다 상태가 거칠어 결국 포기했다. 국토교통성 간부는 “음료, 물, 기저귀 등 생필품 전달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이시카와현에서는 3만가구에 여전히 전기 공급이 끊긴 상태고, 이시카와·니가타현 등의 11만가구는 단수로 고통을 받고 있다. 골든타임인 72시간은 지났다. 노토반도에 기적이 필요한 순간이다.

가나자와/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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