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우리는 과연 상식적인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때
신승건 부산 연제구 보건소장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투표장으로 향할 전망이다. 60여 국가에서 40억 명의 유권자가 전국구 선거를 치르게 된다. 당장 오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가 있다. 3월에는 전쟁 중인 러시아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실시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우크라이나 대선도 예정되어 있다. 4월은 인도 총선이 이어진다. 6월 유럽 의회 선거에 이어 8월께 미국에선 대선 후보가 결정되고 이어서 11월까지 대선 레이스가 펼쳐진다. 그 밖에도 인도네시아 대선과 총선, 포르투갈과 벨기에 총선, 멕시코 대선도 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4월에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 선거들은 각국의 정치적 변화와 국제 정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다이앤 코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공정책학 교수의 말을 인용, 선거 후 세계 경제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코일 교수는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들도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경제 포퓰리즘 정책을 펼 것으로 분석했다. 2개의 전쟁을 목도하고 있는 국제사회가 정치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전환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선거는 경쟁이다. 그냥 경쟁도 아니고 생존 경쟁이다. 문제는 너무 격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 사이에 상대편에 속한 이들을 적대시하고, 심지어 부정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말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대방을 두고 곧잘 비상식적이라고 한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비상식적이다” 등에서 드러나는 타인을 향한 비상식적이라는 말, 여기에는 ‘나는 그들과 달리 상식적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상식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상식’이라고 하는 단어는 영어로 ‘common sense’라고 한다. 이는 라틴어 ‘sensus communis’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과 지각에 관한 그의 이론에서 ‘코이네 아이스테시스(koine aisthesis)’, 즉 ‘공통 감각’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는데, 다양한 감각을 통합해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가리킨다. 이후 이러한 개념은 중세 스콜라 철학을 거쳐 근대 유럽 사상으로 전달되었으며, ‘common sense’라는 현대적 용어로 정착되었다.
이제 상식은 단순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지식’이라는 뜻을 넘어서,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는 가치와 믿음의 체계를 포괄한다. 예를 들어, 18세기에 토머스 페인은 그의 정치 철학 저작의 제목을 ‘상식론(Common Sense)’으로 지으며 미국 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여기서 상식은 단순한 지식의 집합을 넘어서, 사회적 정의와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다. 말하자면, 상식이란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통념이다. 내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내가 이 사회의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가치와 믿음을 따른다는 뜻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언론 매체에 쉼 없이 오르내리는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자. 정당과 인물을 막론하고 50% 넘는 지지율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 말은 곧 어떤 정치적 견해를 갖든지 이 사회를 구성하는 절반 이상과 다른 입장에 서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설령 절반을 넘는 이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 외 나머지의 상당한 비율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이걸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가치와 믿음’이라는 ‘상식’의 의미에 적용한다면, 충격적이게도 우리 각자는 사실 비상식적인 정치적 견해를 갖기 마련인 것이다. 정치를 주제로 타인을 향해 비상식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인 이유다.
물론 다수가 항상 옳은 건 아니다. 다수가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내 생각만이 상식이라고 섣불리 말하기에는 이 사회에는 너무도 다양한 견해가 공존한다. 그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나는 상식적이고 너는 비상식적이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도 비상식적이면서 타인에게 비상식적이라고 하는 건 조금 무례한 태도가 아닐까. ‘당신도 저처럼 비상식적이군요’라는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가오는 선거의 계절, 타인에게 비상식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욕구가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잠깐 감정을 추스르고 심호흡을 해보자. 그러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잠깐 생각해 보자. 이때 여론조사가 나와 다른 생각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쓰인다면, 여론조사의 용도로서 이보다 더 값진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바라건대, 2024년 새해에는 ‘나 자신이 비상식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가장 널리 퍼진 ‘상식’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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