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8] 나의 미래를 알려다오

류동현 전시기획자, 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2024. 1.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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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류동현 제공

연초가 되면 소셜미디어에서 ‘토정비결’이나 ‘신년 운세’에 대한 광고가 급격히 늘어난다. 사람들은 올해의 운수가 어떤지 점을 보러 다니고는 한다. 이렇듯 운세나 점괘대로 삶이 흘러 이를 대비하면 좋으련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운명이나 미래를 미리 알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오랜 역사를 가진다. 그리스 델포이는 점괘와 예언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점집’ 중 하나일 게다. 이곳에는 지력, 창의력, 문명을 관장하고 태양신으로 불렸던 아폴론에게 봉헌한 신전이 있다. 아폴론은 예언의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무녀인 피티아를 통해 예언과 신탁을 인간들에게 내렸다. 이른바 ‘신점’이다. 예언과 신탁을 듣기 위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스 시대인 기원전 6세기 전성기 이후 로마 시대까지도 명성은 계속되었는데, 4세기 비잔틴 황제 율리아누스가 받은 신탁을 마지막으로 델포이는 멸망했다. 19세기 발굴이 될 때까지 델포이는 역사의 한편에서 잊혔다.

델포이를 찾은 때는 이른 3월이었다. 그리스 코린트만과 파르나소스 산맥의 구릉 사이에 위치한 델포이의 신전으로 가는 길은 과거 신탁의 시대에도 어려웠지만, 지금도 그렇게 녹녹하진 않다. 어렵사리 도착한 산 중턱의 유적 입구에서 신전까지는 또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야 한다. 길 옆으로 봉헌물과 보고(寶庫)들의 자취가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자 아폴론 신전의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남아있는 6개의 기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육중하다. 어떻게 이 높은 산의 중턱에 거대한 신전을 지었을지 감탄이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전 외에도 기원전 4~3세기에 지은 극장과 고대 경기장까지 남아있다. 놀랍다. 신탁이 내려올 정도의 영험함이 주변에 서려있는 듯하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06년 영화 ‘300′은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군이 붙었던 테르모필레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은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고자 하지만, 신탁의 권위는 무시하지 못한다. 신탁은 출정을 금지한다. 그러나 왕은 단 300명만을 이끌고 자신들의 운명을 꿋꿋이 개척하고자 출정한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운세는 운세일 뿐, 자신의 의지와 힘을 믿는 한 해가 되길. 1월 초, 슬슬 시동을 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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