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보수는 유능’이란 인식도 시험대에 섰다
인천공항·북방정책·복지에 성과
흔들리는 ‘보수 유능, 진보 도덕’
한동훈비대위 성패는 결국 실력
노태우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인 정해창씨 회고록 중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1991년 2월 청와대 참모들 사진 속에는 최영철, 이홍구 정치특보, 김종인 경제수석, 김종휘 외교안보수석, 김학준 정책조사보좌관, 손주환 정무수석이 있었다. 그들은 학자, 언론인, 공무원처럼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보수와 진보 모두에서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다. 이후 총리와 국회 부의장, 정치인 그리고 학자로 큰 족적을 남긴다.
당대 최고라 함은 명문 대학이나 명문 집안, 고시 출신 이런 게 아니다. 실력이다. 실력은 자격증이나 졸업장이 아니라 성과로 증명한다. 그 분야 전문가 10여 명 정도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게 실력이고 평판이다.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소련과 중국을 포함해 45국과 수교한 북방 외교가 이뤄졌다. 분당,일산 등 신도시 5곳을 건설해 200만가구 공급을 추진했다. 모두 안 된다고 한 인천국제공항과 경부고속철도는 노태우 정부 국책 사업이었다. 국민연금 도입과 건강보험 전 국민 확대 같은 시대를 앞선 복지 정책이 보수 정부에서 이뤄졌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났다. 당대 최고 인재들이 이뤄낸 성과였고 대한민국의 전진이었다.
정해창씨는 “노태우 대통령은 출신과 배경을 가리지 않고 최고 인재를 기용했다”고 설명했다. “내가 왜 발탁됐는지 모르겠다”는 장관이 수두룩했다. 노태우는 참모들에게 “밖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라”고 지시했다. 정해창은 “그렇게 참모들이 만난 원로와 석학들은 나중에 노 대통령의 원군이 됐다”고 말했다. 선거로 선출된 노태우 정부였다. 하지만 12·12라는 원죄가 있었고 여소야대라는 최악 환경에서 시작했다. 회고록 상당 부분은 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여당의 내분을 막고 야당을 끝까지 설득하려 분투한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민주당이 군부 독재라고 부르는 30년 전 한국 정치에서 지금은 사라진 협치와 타협의 모범을 읽는 건 반갑기도 서글프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2기 내각 인선이 완료됐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내가 모르는 사람이어도 좋다”며 내각의 다양성을 주문했다. 좋은 말이지만 그동안 대통령이 아는 사람 위주로 인사를 했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1기 내각과 대통령실에는 좋은 대학과 배경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30년 전 노태우 정부처럼 그들이 ‘당대 최고’였는지는 의문이다. 한동훈 장관 외에 이름을 기억할 만한 장관이 마땅히 없다.
오랫동안 유권자들은 “보수는 부패해도 유능하고, 진보는 무능해도 도덕적”이라는 믿음으로 선거에 임해왔다. 보수 정부의 부패가 드러나면 민주당에 기회를 줬다. 부동산과 외교에서 무능이 확인된 민주당 정부는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진보의 도덕성은 이미 파탄 났고, 보수가 유능하다는 말에 대한 의문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번 총선은 국민의힘의 능력, 민주당의 도덕성이 심판대에 오른 선거다. 윤석열 정부는 정책의 방향성에서는 대체로 박수를 받았지만, 능력 측면에서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여권의 분열, 이재명 대표 피습에서 드러난 극단 정치는 악화일로다. 한동훈 비대위는 운동권 정치 청산을 내걸었지만 그건 구호일 뿐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한동훈 비대위는 “그래도 보수가 유능하다”는 말을 증명하는 데에서 성패가 갈릴 것 같다. 특정 지역과 직업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좌파도 인정하는 당대 최고를 공천한다면 운동권 정치 청산은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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