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낙태 병원은 오늘도 성업중

주형식 기자 2024. 1.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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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의 A산부인과. 20대 여성 3명이 낙태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3명 중 2명은 임신 30주 이상, 나머지 1명은 임신 23주라고 했다. 낙태하려는 이유를 물어보니 “이미 한 명이 있어 키울 여력이 없다” “남자 친구가 원치 않아서 도저히 혼자 키울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 중구의 B산부인과는 임신부 건강 상태에 따라 30주 이상 낙태 수술이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날 B산부인과엔 2명의 임신부가 낙태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한 달 평균 10대 여학생 3~4명의 낙태 수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새해 찾아간 낙태 수술 전문 병원들은 성황리에 운영 중이었다. 특히 ‘30주 이상’의 임신 말기 낙태 수술은 1000만원이 넘는 비싼 수술비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A산부인과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 병원은 매년 평균 400여 건의 낙태 수술을 하고 있으며 이 중 약 30%가 임신 30주 이상 임신부들이었다. 한 의사는 온라인에 “30주 이상 낙태도 가능하다. 병원 위치는 전화 상담 후 자세히 알려드린다”는 내용의 광고를 올렸다. 이 병원은 대부분 30주 이상 임신부들을 상대로 낙태 수술을 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 22주’를 낙태 허용의 상한선으로 판단했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이유로든 낙태해선 안 된다고 했다. 헌재는 그러면서 이듬해 말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다. 하지만 국회는 4년이 넘도록 낙태 허용 범위 등을 규정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고 있다. 결국 낙태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입법 공백 상태로 처벌 근거만 사라져 임신 말기 낙태가 이뤄지는 것이다. 독일·이탈리아 등 낙태를 법으로 허용하는 상당수 국가는 임신 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 낙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낙태 건수는 2019년 2만6985건에서 2020년 3만2063건으로 증가했다. 낙태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와중에 A·B산부인과처럼 ‘30주 이상’ 낙태 수술을 해주는 병원은 지방 임신부들이 수백㎞를 달려오는 ‘낙태 성지’로 변모했다. 또 불법 낙태 약물을 유통하는 범죄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 9월엔 40대 여성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베트남산 불법 낙태약을 판매한 혐의로 붙잡혔다. 결국 여성들이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낙태를 위한 정상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한국은 합계 출산율 0.8명도 안 되는 초저출산 국가다. 임신한 여성, 배 속의 태아가 무분별한 낙태 수술에 계속 방치된다면 앞으로 그 어떤 저출산 극복 대책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정부와 국회는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더는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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