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76] 독재가 부르는 파탄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2024. 1. 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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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바느질은 ‘재봉(裁縫)’과 동의어일까. 흔히는 그렇게 여기지만, 엄격하게 따지자면 차이가 있다. 바늘에 실을 꿰어 옷을 짓는 일이 바느질이라면, 재봉은 옷감을 마르고[裁] 꿰매는[縫] 두 행위를 함께 가리키기 때문이다.

무명이든 비단이든 옷감은 예로부터 귀했다. 상당한 인력을 들여야 만들어지는 의복의 재료였던 까닭이다. 따라서 그 옷감에 칼을 대 이리저리 자르는 마름질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른바 재단(裁斷)이라는 동작이다. 한 번 자르면 돌이키기 힘든 경우다. 그래서 이 글자는 그런 행위와 관련이 있는 ‘권력’의 의미를 지닌다. 마름질하는 행위를 모두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총재(總裁)라고 부르고, 어떤 동작을 가로막는 행위는 제재(制裁)라고 적는다.

직장 상사의 권한은 무언가를 허락하는 동작에서 드러나는데, 우리는 그 일을 결재(決裁)라고 한다. 법이나 규범 등의 기준을 설정해서 최종적인 옳고 그름을 판가름 내는 일은 재판(裁判)이다. 법원을 때론 재판소(裁判所)라고도 했다.

중국에서는 조직으로부터 인력 잘라내는 일을 이 글자로 잘 쓴다. 재인(裁人)이라거나 재원(裁員)으로 표기한다. 대량 감원(減員)이 벌어져 실업률이 급격히 상승하는 중국에서 요즘 들어 이 둘은 가장 불길한 어감을 지닌 단어다.

개혁·개방의 풍조는 모두 사라지고 권력을 쥔 한 사람이 모든 옷감을 마름질하는 독재(獨裁)의 형국이 펼쳐진 지 오래다. 그로 인한 경기의 하강 추세가 수많은 일자리 감축, 고도의 청년 실업을 불렀다. 아예 ‘실업 물결[失業潮]’이라는 표현도 나돈다.

옷감 자르기만 있지, 바느질은 보이지 않는다. 재단만 있고 봉합(縫合)이 뒤를 따라주지 않아서 중국이 걸친 큰 옷 여기저기가 갈리고 뜯긴다. 그로써 속살이 훤히 드러나니, 우리는 이 경우를 파탄(破綻)이라거나 탄로(綻露)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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