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龍 노릇도 어렵다
올해는 푸른 용의 해 갑진년이다. 천간 중의 갑(甲)은 커다란 나무의 물상이고 방위로는 동쪽에 해당된다. 동쪽을 상징하는 색깔은 푸른색이기에 갑진년은 푸른 용의 해인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문화에서 용은 제왕의 상징이었다. 사슴의 뿔, 소의 머리, 뱀의 몸, 물고기의 비늘을 지닌 용의 하이브리드적인 형상은 제왕이 지닌 다양한 덕목을 상징한다. 용은 비를 내리는 능력도 지닌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 제왕은 용의 신에게 기우제를 지내 풍년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다.
여성 용인 용녀(龍女)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용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재주를 갖추고 신통술을 부린다. 중국 고전소설 ‘유의전’ ‘장무파’에는 동정호나 남쪽 바다 용왕의 딸인 용녀가 등장한다. 용녀들은 인간 남성을 배필로 선택하고 인간 남성은 용녀 덕택에 용왕의 사위가 되는 복을 얻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에서 여성 용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도교 사상이 있다. 여성 친화적인 도교 사상은 물의 상징인 용에 여성 신격을 부여했다. 따라서 용은 제왕으로 표상되는 남성일 수도 있으며 용녀와 같은 여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용이 되기도 어렵지만 용 노릇을 제대로 하기도 어렵다. 이무기는 천 년이나 묵어 승천에 성공해야만 용이 될 수 있다. 또한 잉어가 하진(河津)이라는 급류를 뛰어넘어 올라가야지만 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하진의 급류를 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흥미롭게도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 몬스터’에서는 이 고사의 변용으로 잉어킹이 진화되다가 변성이 되어 버린 악룡 갸라도스를 만들어낸다. 갸라도스는 문제가 생긴 용이기에 파괴 본능이 강하고 함부로 힘을 사용한다. 중국 고전 서사 ‘소광(蕭曠)’에서는 용이 호색하거나 제비 고기를 먹는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용이 아니라고 한다. 이토록 용으로 살아가기는 어렵고 여러 제약이 있는 것이다.
푸른 용의 해, 수많은 예비 용들을 기다린다. 여성 용도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고생과 수양 끝에 급류를 제대로 훌쩍 넘은 잉어가 푸른 비늘 반짝거리는 진짜 용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용이 뿌리는 단비가 천하에 내려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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