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68.영화 ‘마농의 샘’을 보고 그린 그림
농군이 가장인 마농네 세 식구…뜨네기 신세 팍팍한 마을 인심 궂은 날 연속
위골랭 넋 빼앗은 열여덟살 마농…여름날 구름 바뀌듯 마음밭 요동치다 엇갈린 운명
프랑스 남동부 식은 바람 부는 옅은 청보랏빛 산등성 허위허위 오르는 당나귀와 세 사람
그래도 파리보다 소박한 자연·따스한 라이프 스타일 가진 우아한 프로방스 사람들이 좋았다
그림을 본다. 프랑스 남동부 지방 프로방스에 어스름 달밤이 깊었다. 사위어가는 한여름의 그믐달도 어느덧 힘이 다해 가는지 소슬하고 적막한 산 능선의 청 보랏빛 생기가 퍽이나 엷어졌다. 어쩌다 한 번씩 가늘게 식은 바람이 분다. 가파르고 아득한 산길을 세 사람이 당나귀와 함께 허위허위 올라가는데, 가물철 콩 줄기 같은 기운조차 쓰지 못할 듯한, 허리 휘영휘영한 몸매의 여인과 어린 소녀의 양손에도 어김없이 짐이 들려 있어서일까? 안쓰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저 어둑발이 충충하게 뻗친 산길 왕래가 오늘만 해도 몇 차례였던가. 아마 가까이 가서 보면 입에서는 단내가 폴폴 나고 낯빛은 마치 무두질한 가죽처럼 하얗게 질려 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산비탈 나무들 우듬지에 번져 있던 달빛이 동정이라도 하듯 후르르 흔들린다. 무슨 일이 있기에 저들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잠도 내팽개친 채 반은 엎어지고 반은 자빠지면서 저렇듯 밤일에 지쳐가고 있는 것일까?
가장의 이름은 쟝 카도레, 그리고 소녀의 이름은 마농이다.
사람의 삶이란 게 어둡고 혹독한 그 무엇이고 농군에겐 고생이 곧 거름이듯이 소박한 꿈을 가슴에 담고 땅을 물려받은 시골에 들어와 작은 행복을 일구어 가는 마농 세 식구의 현실은 줄곧 궂은 날의 연속이다. 뜨네기 신세에 대한 마을의 인심은 동서양이 따로 없어서일까? 곱추(척추후만증) 쟝이 공연히 겪게 되는 서럽고 스산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특히 감기 고뿔도 남에게 안 줄 만큼 인색한 수베랑 가문의 파페삼촌과 위골랭의 땅에 대한 욕심과 탐욕은 풀보다 더 시퍼런 칼날로 작용한다. 결국 쟝은 부족한 물을 얻으려고 우물을 파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작업을 하다가 끝내 목숨까지 잃고 말지 않던가. ‘무섭다니까 바스락거린다’고 하듯 남의 약점을 알고 멀쩡하던 샘물을 시멘트로 덮어 쟝이 용의 알처럼 소중하게 가꾼 농작물을 망치고 결국 헐값에 손에 넣는 장면에서는 ‘인간이란 저렇게도 쉽게 악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인간 존재의 본성에 낙담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등 문지르고 간 빼먹는 수작’이라는 말이 어쩜 그리도 정확히 들어맞는지! 겉으로는 밥 주고 떡 주는 것처럼 후대하는 듯하면서 뒤로 파렴치하게 이득을 취하는 파페삼촌(이브 몽탕)과 위골랭(다니엘 오떼유)의 표정 연기는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결국 인간만사 사필귀정이다. 땅을 차지한 파페삼촌과 위골랭은 샘을 덮은 시멘트를 걷어내는데, 하필 그 모습을 마농이 목격할 줄이야! 양을 치며 마을을 떠나지 않은, 열여덟 살이 된 마농. 야드르르하나 다부지게 자라 마치 물에 잘 씻긴 돌멩이 같은 성적 매력을 풍긴다. 그 모습에 위골랭은 넋을 빼앗기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로마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솔에 대한 상사병으로 앉은 채 하늘을 지나는 태양신을 눈으로만 쫓다가 꽃(해바라기)이 된 클뤼티에가 딱 위골랭이었다. 마을에 온 베르나르라는 교사에게 마음을 준 마농은 보란 듯이 그와 혼인하고 위골랭은 여름 날씨에 구름 바뀌듯 마음 밭이 요동치다가 마침내 극단적 선택을 한다.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파페삼촌의 운명을 갈랐다. 영화 후편의 끝에 쟝이 바로 자신의 친아들임을 알게 된다. 아둔패기였음을 뒤늦게 후회하면 무엇하겠는가. 인생은 한 번 흘러간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그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가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소를 해본다. “새는 모이를 탐하다가 그 목숨을 잃고 사람은 재물을 탐하다가 그 몸을 망친다.” 죄책감과 충격에 사로잡혀 막대한 재산을 손녀 마농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쓰고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이 영화를 그림으로 그린 가장 큰 이유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풍경 때문이었다. 영화 속의 프로방스는 예술가인 내게 ‘사랑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땅’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대도시 파리보다 부드러운 바람과 라벤더 향기가 나는 소박한 자연, 화려하기보다는 따스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우아한 프로방스 사람들이 좋았다.
시인 예이츠는 아일랜드를 보고 “현대의 저속함에 물들지 않은 땅”이라고 노래했다. 파리가 프랑스의 심장이라면 프로방스는 프랑스인의 피(DNA)가 아닐까 싶다. 저속함에 오염되지 않은 품격이 프로방스에는 분명히 깃들어 있다.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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