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한 거지, 실패한 게 아냐[이재국의 우당탕탕]〈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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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오락실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처음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친구 옆자리에 앉아 친구가 하는 '보글보글' 게임만 구경했다.
그렇게 학원도 빼먹은 채 눈에 불을 켜고 왕을 깨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는데 엄마는 내게 500원을 주시며 "몇 판만 더 하고 와"라는 말씀을 남기고 오락실을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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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넘어 친하게 지내던 형에게 사기당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로 큰돈이었다. 자기가 짓고 있는 건물에 투자하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나는 엄마를 며칠간 조르고 졸랐다. “이 돈만 주시면 저는 제가 평생 알아서 살아갈게요. 부탁드려요, 엄마.” 엄마는 막내아들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큰돈을 마련해 주셨다. 사기라는 게 늘 그렇듯 처음에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석 달 후, 그 형은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경찰에 사기로 그 형을 고소했고 2년 후 그 형은 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잡혀서 한국으로 이송됐다. 나는 그 형을 증오했고 그 형의 부모님이 우리 집에 찾아와 무릎 꿇고 빌었지만 합의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용서해라. 개구멍을 보고 개를 몰아야지 개구멍이 없는데 계속 몰아붙이면 개가 사람을 무는 법이야.” 난 분해서 눈물이 났다. 아무 답을 하지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데 엄마는 또 말씀하셨다. “그 사람 용서해야 나중에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지. 네가 다른 생각 안 한 것만 해도 엄마는 고맙게 생각해.” 나는 다음 날 그 형을 찾아가 합의를 해줬다. 그리고 그날 이후 누군가 큰돈을 벌게 해준다거나 노력 없이 뭔가를 이루게 해준다고 하는 얘기에는 흥미를 잃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살면서 실수했을 때 옆에서 “넌 실수한 거지. 실패한 게 아니야”라고 얘기해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린 시절 오락에 빠져 엄마 지갑에 손댄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벼운 실수라 할 수 있지만 스무 살 넘어 큰돈 사기당한 건 나에겐 정말 큰 실수였다. 만약 그 일 때문에 내가 “난 실패한 놈이야”라고 생각하고 그 늪에 빠져버렸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 같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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