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도 계획은 있었다, 링 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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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에 바로바로 반응하겠다더니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해가 바뀌고 며칠이 지나도록 '나의 다짐'만 반복하는 모양새다.
자신에게는 불출마가 곧 헌신일지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출마를 위해 땀 흘려온 그 당의 구성원이라면 박탈감이 들 발언이다.
한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민주당 강성 지지층) 전체주의와 결탁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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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에 바로바로 반응하겠다더니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해가 바뀌고 며칠이 지나도록 ‘나의 다짐’만 반복하는 모양새다. 용기와 헌신으로, 선의를 갖고, 동료 시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겠다는 의지는 알겠으니 이제 그만 방법을 좀 밝혀주면 안 될까. 어쩌자고 모든 메시지에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나.
정작 민심이 원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국회를 통과한 특별검사 법안의 정식 명칭에 담긴 김건희 이름 석 자조차 언급하는 게 불경스럽다고 여기는지 “도이치 특검”이라 달리 부르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총선용 악법”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도 안 하고, 기소든 무혐의든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끈다는 걸 국민 대부분이 안다. 특검 외에 진실을 밝힐 방도가 있나. 빈말이라도, 민심을 경청해 대통령이 좋은 판단을 하도록 돕겠다는 정치적 수사조차 없다.
‘공천 물갈이’를 예고하면서는 “우리 당의 자산과 보배들에게 필요한 헌신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합리적인 경쟁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헌신이라며, 필요한 결정을 “사심 없이” 하겠다고 했다. 인재 영입도 강조했다. 자신에게는 불출마가 곧 헌신일지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출마를 위해 땀 흘려온 그 당의 구성원이라면 박탈감이 들 발언이다. 최소한 경쟁 기준이라도 먼저 제시하는 게 순서 아닐까. ‘자산과 보배’라는 미사여구만 있을 뿐 그들을 ‘동료’로 존중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빅 낙하산’의 오만함일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가벼움일까. 아니면 자신의 선의가 당을 구하리란 믿음에 들뜬 탓일까.
한 위원장은 대구·경북 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2023년 법무부 장관으로 대구를 찾았다가 동대구역에서 3시간 넘게 시민들과 사진 찍은 일화를 들어 그때 정치할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 면에서 대구는 제 정치적 출생지 같은 곳”이라고 했다. 누가 들어도 얄팍한 서사를 심히 거창하게 읊어, 실소한 이가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지 윤 대통령으로는 위험하다고 여기는 비측근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세운 일군의 세력에 지나치게 ‘플러팅’(꼬임)당한 게 아니냐는 걱정도 따른다.
‘딱 세 번 효과’란 게 있다. 누구든 열광적인 당원과 지지자들이 모인 곳에 세 번만 데려가 센터에 세우면 눈빛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정치뽕’이라고도 부른다. 그러고 보면 한 위원장은 일찍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의 입씨름으로 박수받을 때부터 ‘구세주 증상’을 보였다. 나인가, 저들을 응징할 이는? 이 나라를 구할 사람은? 국민의힘 당적을 지닌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응, 너야. 다음번 희생양.” 대표와 비대위원장을 몇 번이나 갈아 끼운 윤 대통령이 한동훈만큼은 예외로 둘지 미지수라고 했다. 민심은 물론 당심 역시 언제까지 그에게 호의적일지 모를 일이다.
한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민주당 강성 지지층) 전체주의와 결탁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누가 들으면 지금 이재명이 대통령이고 민주당이 여당인 줄 알겠다. 표현만 다를 뿐 윤 대통령이 즐겨 쓰는 기득권, 패거리, 카르텔과 겹친다. 정치를 잘 모르면서 정치를 만만히 여긴다는 점에서도 한 위원장은 놀랍도록 윤 대통령과 판박이다. 잘할 생각은 안 하고 이길 생각만 하는 것도 똑 닮았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링 위에 오르기 전에는.
김소희 칼럼니스트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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