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04)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
[1970년대 중반, 일기] 부모님과 여행을 가기 위해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이 보물1호 흥인지문(동대문) 옆에 위치해서 부모님도 쉽게 찾아오셨다. 예전에는 이곳이 경성(서울)전차 차고지였는데 전차운행이 중단되면서 1972년에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이 건립됐다. 1969년부터 경인, 경부, 호남고속도로가 잇따라 개통되면서 ‘고속버스’라는 차종이 등장했고 ‘터미널’이라는 영어 단어와 듀엣처럼 합체하여 ‘고속버스터미널’이 탄생했다.
우리는 벤츠 마크가 부착된 고속버스에 승차했다. 한국은 고속버스 완성차 생산능력이 없어 독일 벤츠회사에서 직수입한 버스를 사람들은 ‘벤즈 버스’라 불렀다.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중간에 정차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통행하는 게 고속버스다. 그런데 시골 국도를 완행으로 달리는 시외버스 업체들도 사명에 고속버스를 표기했다. 고속버스, 이름만으로도 괜히 멋져보였다.
복잡한 서울 시내를 벗어난 고속버스가 제3한강교(현재 한남대교)를 건너자 논밭밖에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 교통정책에 따라 한강변 저지대 땅값이 저렴한 강남 반포에 모든 버스회사들의 노선버스들을 한데 집결하는 서울종합고속버스터미널(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1982년에 완공된다고 한다. 한진고속, 동양고속, 천일고속 등 회사별로 서울시내 교통요지에 산재되어 있는 터미널이 교통체증의 원인이라 이전하는 것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차창 밖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떼지 못했고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는 앞좌석 등받이에 부착된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셨다. 동승한 미니스커트 차림의 안내양이 시원한 물을 한 잔씩 승객들에게 따라줬다. 기차가 닿지 않는 지역까지 들어가는 고속버스 덕분에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됐다고 생각하니 고속버스가 기특하게 여겨졌다.
여행을 마치고 동대문고속버스터미널로 버스가 돌아왔다. 고속으로 반세기가 흘러 2023년 사진에는 터미널이 흔적조차 없다. 그 자리에 JW 메리어트 호텔이 들어섰다.
떠날 시간이 가고 새해가 1월1일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현재 지방 소도시의 버스터미널은 인구소멸로 하나둘 폐업하고 있다. 사라진 터미널 공간에서 간직한 추억은 낯선 장소에 내린 듯 서성거린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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