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너 사재출연" 태영 주장?…채권단·금융당국 "말장난인가"

이르면 5일 주요 채권자 재소집
금감원장, 태영 측에 '최후통첩' 날려
F4 회의 예정된 이번 주말 '분수령' 예상

사진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태영그룹이 4일 오후 전격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전제 조건인 첫 번째 자구안을 모두 이행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전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다가 오너 일가가 개인 명의 자금을 빼돌렸다는 의심까지 제기하고 있어 혼돈이 커지고 있다.

이날 태영그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 전액을 약속대로 태영건설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매각대금 1549억원 중 400억원은 워크아웃 신청 직후 태영건설의 협력업체 공사대금 지급에 사용됐고, 워크아웃 신청 후 티와이홀딩스에 청구된 태영건설의 연대채무 중 리테일 채권 상환에 890억원을 투입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나머지 259억원도 전날 태영건설 공사현장 운영자금 등에 모두 투입됐다고 티와이홀딩스는 밝혔다.

이에 채권단과 당국은 당황하고 있다. 티와이홀딩스 연대채무에 갚은 돈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시 전제한 조건이라 자구안의 일환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태영 측은 채권단 설명회에서조차 이 부분에 대해 오너가의 사재출연 부분의 일환이라고 언급한 바가 없었으며, 설명회 직후 급작스레 진행됐던 태영그룹의 브리핑에서도 '사재출연은 진행 중'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한 관계자는 "그야말로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라며 "연대보증 채무는 이미 태영건설의 채무가 아니라 티와이홀딩스의 채무인데, 자기 채무를 갚아놓고서 태영건설을 지원했다고 해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티와이홀딩스가 살아야 태영건설이 살아야 한다'는 태영 측 주장에 대해서도 "(해당)논리도 대주주 입장에서야 맞는 이야기지만, 티와이홀딩스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말고 다른 대안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데도 태영건설을 위해 써야 하는 돈을 '돌려막기'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태영 측 발표에 "말장난하면 안 되는 분위기"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일부를 오너 일가가 개인 몫을 일부 빼돌렸다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원 중 티와이홀딩스 지분 1133억원을 제외한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지분 몫인 416억원인데 이 돈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티와이홀딩스 지분 1133억원에서 태영건설에 400억원이 들어갔고, 나머지 금액에 회삿돈을 합쳐 연대채무 890억원을 갚은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중 티와이홀딩스 지분이 아닌 윤 회장 지분은 투입이 안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대주주 일가의 자금은 파킹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며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언급했는데,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채권단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중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의 딸 윤재연씨 몫 513억원도 태영건설에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성사의 분수령은 이번 주말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주말 고위급 협의체인 'F4(Finance 4)' 회의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이미 금감원장은 태영 측에 채권단을 설득할 만한 자구안을 이번 주말까지 내놔야 한다는 최후통첩도 날린 상황이다.

태영 측이 제시하는 추가 자구안 내용에 진정성이 결여됐다고 판단할 시 법정관리 시나리오까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이르면 오는 5일 주요 채권단을 소집해 태영건설의 추가 자구안 필요성 등을 논의한다. 때문에 태영건설이 오는 11일로 예정된 제1차 채권단 협의회까지가 아니라 바로 이번 주말까지 채권단이 납득할 수 있을 수준의 자구안을 내놔야 할 전망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신용 공여액 기준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채권단 중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많은 채권자가 내일 열릴 회의 참석 대상이다. 산은이 파악한 태영건설의 채권단 609곳 중 500억원 이상 익스포저가 있는 곳은 60여곳이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