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거꾸로 가는 국정방향과 천박한 노동인식

기자 2024. 1. 4.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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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었어도 반가움보다는 우울함이 크다. 이스라엘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화적 사태 해결 촉구에 불만의 목소리만 들린다. 바로 옆 일본은 한동안 잊고 있던 지진으로 재난을 당했고, 한반도 정세 또한 녹록지 않은 듯하다. 올해는 미국을 포함하여 약 50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있다. 유럽연합 의회 선거도 있으니 국제정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정치 환경 변화는 전 지구적 차원은 물론 국가 차원의 노동문제와 연관된 무역과 통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국제협약 비준과 이행은 노동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연동된다. 대표적으로 한·EU FTA 체결 관련 논란을 되짚어 보면 된다. 2018년 유럽연합(EU)은 한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 13장의 ‘무역과 지속 가능한 발전’ 규정 미이행 건으로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당시 FTA 이행사항은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철폐’와 같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였다. 2011년 체결 이후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것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우리의 기존 통념과 사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국제사회에서 노동은 경제의 하위 범주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난 몇년 사이 정부의 노동인식은 변했을까. 오히려 국제 흐름과 역행하는 모습들만 확인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은 벼량 끝에 내몰리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한 지 오래다. 이미 자본과 기업의 이윤 향유를 위해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부터 과로 사회로 내모는 노동시간 정책들이 검토되고 있다. 때론 노동하는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이 목도된다. 최근 이주노동자 도입 과정에서 일부 정치가들의 언사들이 대표적이다. 국제협약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인 정책들이 거리낌 없이 논의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으로 만든 원칙과 기준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이런 우려는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힌 대통령 신년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대국민 신년사를 발표했다. 올해 신년사를 보니 경제 활력, 수출 개선, 경기회복과 성장주도, 물가안정, 규제 혁파, 기업 창의 혁신, 시장경제 원칙과 건전재정 기조 유지 등 화려한 수식어와 표현들이 난무했다. 특히 대통령은 대한민국 재도약을 위한 ‘행동하는 정부’를 표방했다.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구체적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정책을 펼치겠단다. 그러나 신년사 전문에서 노동은 ‘존중’이 아닌 ‘개혁’ 대상으로 표상화됐다.

취임 이후 대통령은 빠짐없이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개혁을 언급한다. 신년사에서도 흔들림 없는 추진을 거듭 강조했다. 2023년 신년사(1983자) 중 노동은 248자로 12.5%를 차지했던 반면, 2024년 신년사(4256자)에서는 274자로 6.4%에 그쳤다. 얼핏 전체 비중이 작아진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사법치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이중구조, 임금체계가 노동개혁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특히 엊그제 대국민 신년사에서는 새로운 흐름도 감지된다. 바로 과거 ‘노사 공정성’의 어휘가 ‘불법행위 엄정 대응’으로 바뀌었다. 만약 그 대상이 노동조합이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이권과 카르텔의 개혁 대상은 자본과 기업이 아닌가.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약자를 위한 정부라면 5인 미만과 초단시간부터 플랫폼노동과 프리랜서와 같은 일하는 시민들에게 어떤 보편적 권리를 보장할지 화두를 던져야 했다. 노동시장의 격차와 차별 해소를 위한 화두가 필요했다. 인구구조 변화부터 AI와 노동과 같은 글로벌 이슈와 노동의 미래를 고민할 시점에 우리의 노동 시계는 거꾸로 흘러가는 듯하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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