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우리는 날씨의 미래다
2005년 북극 이누이트족의 실라 와트클라우티어는 미국을 상대로 인권침해 진정을 제기했다. “이누이트족의 삶의 방식을 망가뜨리고 경제·사회·문화·건강권을 해치는 기온과 날씨 패턴의 엄청난 변화로부터 보호될 권리, 문화적·경제적 독립성과 북극지방의 야생생물이 의존하고 있는 추위, 얼음, 동토를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주창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문제를 최초로 공론화한 사건이다.
녹아내린 북극의 빙하 중 4분의 1이 그린란드의 얼음이다. 기원전 2400년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온 이누이트족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글루도 만들 수 없다. 단단하던 얼음이 갈라지자 그 위를 지나 이동해야 하는 일상이 무너지고, 사냥감이 없어 변경한 곡물 식단이 건강을 해쳤다.
겨울 기온이 영상 20도에서 영하 20도 사이 극단을 오간다. 지구온난화는 처음엔 기온이 오르는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점차 더 극단적 형태로 바뀐다. 이를 글로벌 위어딩(Global Weirding)이라 한다. ‘기괴하고 섬뜩하다’는 뜻이다.
전 세계 인구 10명 중 1명이 이상기후로 죽는다.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도 생명을 위협받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샌드위치 패널 같은 가설건축물은 난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3년 전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이 비닐하우스에서 동사하는 참변이 일어났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달노동자들에게도 겨울 한파는 위협적이다. 꽁꽁 언 바닥에 쓰러지고, 빌딩 사이 칼바람에 밀려나고, 기상악화로 올라간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사고의 위험을 무릅쓴 주행을 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클릭해 방금 튀긴 치킨을 배달시켜 먹으면서 대형 화면을 통해 겨울의 비보를 듣는다. 그리고 따뜻한 방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면서 잊는다. 이주노동자에게서 추위로 죽지 않을 권리를, 배달노동자에게서 추우면 쉴 권리를, 이누이트족에게서 추위를 지킬 권리를 빼앗고, 겨울에도 시원하게 맥주 마실 권리를 택한다.
한국은 1인당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 중 하나다. 추울 땐 보일러가, 더울 땐 에어컨이 있고, 비가 오는 날에는 건조기를 돌리면 되니까, 이동할 땐 자가용을 타니까 아무래도 기후위기의 영향을 덜 느낀다. 피해가 덜하니 위험성에 대해서도 무디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니 두려움 없이 탄소배출에 한몫한다.
한국은 산유국을 제외하면 기후위기 대응 꼴찌국가다. 꼴찌니까 더 용기를 내고, 꼴찌라서 더 시급하게, 이제 시작해야 한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불편하게, 넘치지 않고 부족한 듯이, 빠르지 않고 느리게, 이익을 챙기는 대신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2024년 신년회에는 삼겹살 없는 회식이 어떨까? 고기가 아닌 음식을 파는 식당 찾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고기가 아니라면 대체 뭘 먹어야 하지?’ 하고 난감해지는 것이 바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새해에는 매 순간 모든 곳에서 난감해지자. 난감함이 쌓이다보면 어느 날엔가 운전대 잡는 것을 포기하고 뚜벅이가 되기로 작정할지도 모른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지구는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날씨의 미래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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