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1월9일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될까
심란한 일은 너무 많고 되는 일은 너무 없는 시절이라, 화병 나지 않으려고 뉴스를 ‘끊고’ 산다는 사람이 주변에 늘고 있다. 동생은 손흥민 축구 시합을 보는 낙에, 지인 한 명은 판다 푸바오를 보는 재미에 산다고 했다. 나 역시 뉴스를 설핏 보고 대부분 흘리면서 산다. 그러다 지난해 12월20일, 눈 내린 영하 7도의 언 땅에 이마와 두 팔꿈치, 두 무릎 등 온몸을 붙이며,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는 이태원 유가족의 오체투지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은 이태원 참사 418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세월은 “차라리 (친구와) 같이 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심정으로, 회사 동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다섯 개의 가면을 쓰고 다니는” 기분으로, 또한 “아직도 그 시간만 되면 심장이 떨리”거나 혹은 “왜 하필 우리였을까, 조금 억울해”하면서(<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이태원 생존자와 유가족이 겨우겨우 버텨온 시간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 있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418일을 살았다.
주영의 약혼자 병우도 그랬다. 난 그들을 작년 가을 KBS 다큐멘터리 <이태원>에서 처음 만났는데, 둘은 2023년 9월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5년 차 연인이었다. 그들은 참사 당일 함께 웨딩드레스를 구경하고, 저녁을 먹고, 내친김에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가서 데이트를 좀 더 하기로 한다. 그러다 인파 속에서 서로의 손을 놓쳤고, 각자 선 채로 기절했는데 병우는 잠시 후 깨어났지만 연인 주영은 깨어나지 못했다. 다큐 속 병우는 슬픔과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몇번씩 울먹였다.
유가족이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이유는 오직 하나,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 사회에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이 있는지, 재난 시 즉각 가동되는 매뉴얼이 존재하는지,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담당자의 경험 부족 때문인지 조직의 관행 때문인지 등이 명명백백 밝혀져야 한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죽음이 발생했는데, 어떻게 발생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으면 ‘손실’의 온전한 인지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죽음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으면, 죽은 생명이 애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희생자 김유나의 언니 유진은 위의 책에서 “왜 사람 목숨의 경중을 나누느냐”고 묻는다. 우리 사회는 참사 원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사연에 집착하면서, 어떤 사람의 사연이 얼마나 더 절절한지 얼마나 더 대단한 사람이 죽었는지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유가족의 농성, 단식, 행진,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의 눈물겨운 투쟁은 이런 현실, 대통령실에 전달한 유족의 요구에 행정안전부의 ‘민원 처리 공문’으로 답하는 권력의 무책임과 뻔뻔함, 왜 놀러 가서 죽었냐며 죽음의 가치를 나누고 조롱하는 세태에 대한 저항이다. 버틀러의 말대로 사회가 애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애도와 시위는 함께 갈 수밖에 없다.
K팝이 좋아 한국에 유학 왔다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노르웨이인 스티네 에벤센의 부모는 참사 이후 한국 정부로부터 딸이 죽은 이유에 대한 어떤 적절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 정부에 실망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한국의 유가족이 진실 규명을 위해 연대하여 싸우는 모습에 깊이 감동하였다고도 한다.
유가족들은 슬픔과 절망의 삶 속에서도,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가장 낮은 오체투지의 자세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맞서 성숙하며 비폭력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야 합의든 단독이든 1월9일 이태원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과 희생자 가족에 대한 실효적 지원이 핵심이다.
특히 이태원 유가족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희생자의 젊은 형제자매들이 이번 법 통과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게 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작정이다. 새해 나의 첫 미션이 생겼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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