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솔레이마니 추도식 폭발 참사, 미국·이스라엘 소행”
최소 103명 사망에 이란 “강력 응징…반격 장소 곧 결정”
미 “우리와 무관”…수니파 IS의 ‘시아파 맹주’ 도발설도
이란의 케르만시 순교자 묘역에서 3일(현지시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4주기 추모식 도중 발생한 폭발 사고로 최소 103명이 사망한 데 대해 이란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강력한 응징을 예고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갈등의 불씨가 홍해와 시리아·이라크·레바논을 거쳐 ‘시아파 벨트’ 중심축인 이란 본토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사악한 이란의 적들이 또 재앙을 일으켰다”며 “이런 재앙은 반드시 강경한 대응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국가나 단체가 없는 상황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을 사실상 배후로 단정하고 강경 메시지를 쏟아냈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범죄를 저지른 미국과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에 당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말했고, 모즈타바 졸누리 의회 부의장은 “공격 스타일로 볼 때 이스라엘 소행이 분명하다. 반격 시간과 날짜, 장소를 곧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관망하던 이란의 본토에서 테러가 발생해 중동이 확전 기로에 놓였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테러가 1979년 2월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이란 정부가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란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NYT에 “특정 테러 단체가 배후를 자처하더라도 이란은 이스라엘을 테러 가해자로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란 폭탄 테러 배후가 누구든 중동 지역 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급히 진화에 나섰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이 이번 폭발에 연루됐다고 믿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언급을 삼갔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이 미국 등 동맹국에 이번 테러는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설명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아파 맹주 이란을 도발하기 위해 테러를 계획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과거 보았던 IS 행동 패턴과 비슷하다”고 설명했고,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전문가 알리 바에즈도 WSJ 인터뷰에서 “이번 테러는 이슬람 성전주의자나 이란 내 분리주의자의 과거 공격과 성격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2020년 미군에 암살되기 전까지 IS 격퇴에 앞장섰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란이 실제로는 이스라엘 또는 미국에 반격할 의사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NYT에 “하메네이가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들에게 ‘전략적 인내’를 추구하고 이란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국과 직접적인 군사 충돌을 피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동 정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는 양상이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레바논 남부 야룬에 있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건물을 공격해 3명을 사살했다. 전날에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 있는 하마스 시설을 타격해 하마스 전체 서열 3위인 살레흐 알아루리 부국장을 살해했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이날 TV 연설에서 알아루리 부국장 사망을 언급하며 “적이 레바논에 대해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한도, 규칙도, 구속도 없이 싸우겠다”고 말했다. 레바논 정부도 자국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알아루리 부국장 암살 보복은 헤즈볼라의 몫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역 경계를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레바논 영토를 계속 공격하겠다”고 받아쳤다.
홍해를 둘러싼 예멘 후티 반군과 서방의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 12개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홍해에서 계속되는 후티 반군의 공격은 불법”이라며 “후티 반군이 계속 지역의 중요한 수로에서 생명과 세계 경제, 자유로운 무역의 흐름을 위협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야흐야 사레아 후티 반군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도 홍해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프랑스 해운사 컨테이너선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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