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변호사 ‘쌍방대리’ 기준 처음 제시
“역할·보수 등 종합적으로 봐야”…자문 역할 했더라도 해당
대법원은 4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한앤컴퍼니(한앤코)에 주식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확정하면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이 홍 회장과 한앤코를 쌍방대리한 것은 맞지만 양쪽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위법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은 쌍방대리 문제로 종종 논란이 됐는데 어디까지를 위법한 쌍방대리로 봐야 하는지 대법원이 구체적인 기준을 처음 제시한 것이다.
김앤장 변호사들의 쌍방대리 문제는 남양유업 사건 상고심 심리의 핵심 쟁점이었다. 민법 제124조는 대리인은 당사자 쌍방을 대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변호사법 제31조 1항은 변호사는 ‘수임하고 있는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다른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다만 법은 당사자의 ‘허락’이 있으면 쌍방대리가 가능하다고 단서를 두고 있다.
홍 회장은 한앤코와의 주식 매매 계약 체결 과정에서 김앤장 변호사들이 자신과 한앤코를 쌍방대리해 위법하므로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원심 재판부는 쌍방대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앤장 변호사들이 계약 과정에서 홍 회장을 법률상 대리한 게 아니라 단순히 홍 회장의 의사를 한앤코에 전달한 ‘사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 계약서를 검토·수정하고 의견을 제시한 것은 법률상 대리가 아니라 ‘자문’이기 때문에 법이 금지하는 쌍방대리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변호사가 법률상 대리를 했는지, 사자에 불과했는지는 해당 변호사가 상대방과의 외부적 관계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구체적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권한이나 재량이 있었는지, 전문적인 지식과 자격이 필요했는지, 지급되는 보수나 비용의 규모가 얼마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변호사가 복잡한 법률관계가 수반되는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 어느 일방을 위한 자문 역할로 개입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문 역할을 했더라도 쌍방대리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앤장 측은 쌍방대리 논란이 제기될 때 양 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내부적으로 사건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대법원은 이런 법률사무소 구조에서도 쌍방대리 금지 원칙은 적용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법무법인이 아니면서 변호사 2명 이상이 업무 수행 시 통일된 형태를 갖추고 수익을 분배하거나 비용을 분담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법률사무소는 하나의 변호사로 취급된다”며 “이러한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상대방의 관계에 있는 당사자 쌍방으로부터 각자 수임을 받은 경우에도 쌍방대리에 해당해 원칙적으로 수임이 제한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쌍방대리 허용 요건인 ‘당사자의 허락’은 사전 허락 이외에 묵시적 허락, 사후 추인 방식도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허락이 있었는지 여부는 쌍방대리가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증명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당사자 허락’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면 쌍방대리 제한 규정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남양유업 사건에서 법원은 홍 회장이 쌍방대리를 허락한 것이라고 봤다. 홍 회장이 자신과 한앤코 측 변호사들이 모두 김앤장 소속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즉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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