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가 백발로"…'청산가리 막걸리' 부녀 13년 만에 출소

전남CBS 박사라 기자 2024. 1. 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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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재판 2년 만에 결정
아버지 백씨, 고개 떨군 채 말 못 이어
13년 만에 출소한 백씨(왼)와 마중나온 가족. 박사라 기자


"마음이 무겁습니다."

전남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주범으로 지목됐다가 재심 결정으로 15년 만에 출소한 백모(73)씨는 '재심 결정 소식을 듣고 마음이 어떠셨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떨군 채 "마음이 너무 무겁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15년 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찍힌 CCTV 영상에서 검은 머리였던 백씨의 머리카락은 15년 만에 희끗해져 있었다.  

백씨를 마중나온 건 숨진 아내 최모씨의 동생네 가족이었다. 이들은 재심 결정과 백씨의 출소를 환영하는 듯 꽃다발을 준비해왔다.

숨진 최씨의 동생(69)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수사 시작부터 '이건 아니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마을에서도 가족들도 형부와 조카가 그런 범행을 했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형부는 무조건 농사일만 하는 사람이었고 지적장애가 있던 조카는 절대 그런일을 할 아이가 아니였다"며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을 때에도 이렇게 주장해왔다"고 전했다.

피고인 백 씨 심문 영상. 박준영 변호사 제공


광주고법 제2-2형사부는 4일 존속 살해 등 혐의로 기소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은 백씨와 백씨의 딸(39)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또 재심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형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7시쯤 백씨는 순천에서 백씨 딸은 청주에서 각각 출소했다.

백 씨 부녀는 2009년 7월 순천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 아내이자 어머니인 최모씨를 포함해 2명을 살해하고, 주민 2명에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아버지는 무기징역을, 지적장애가 있던 딸은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13년째 복역 중이었다.

범행의 핵심 물증인 청산가리가 발견되지 않는 등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검찰은 두 부녀의 자백을 이유로 기소했다.

앞선 1심에선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혐의가 인정됐고, 대법원 역시 지난 2012년 3월 2심 선고대로 형을 확정했다.

백모씨 딸이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모습.


그러나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2022년 1월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강압이 있었다고 보고 재심을 신청했다.

박 변호사는 검찰이 공소장과 의견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CCTV를 숨기려 하는 등 신뢰할 수 없는 점과 검사의 허위공문서작성행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직무상 범죄사실도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한 영상에서 정모 수사관 태도를 보면 피의자들을 향해 웃거나 비웃고 있다"며 "영상 녹화가 되지 않은 부분의 조서를 검찰이 제멋대로 작성했다"고 했다.

이어 "딸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상당히 낮게 나왔고 딸이 마을 도서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장 진술 등이 있는데다 검찰 조사 등 낯선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아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검찰의 강압과 압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술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딸이 '청산가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엄마를 죽여요'하고 했는데 이런 진술이 법원에 제출되지 않았다"며 "검찰은 딸의 지적 능력이 낮은 것을 이미 알고 '모의'나 '고자질' 등 뜻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 등 오히려 지적 능력이 낮은 점을 '이용'까지 했다"고 짚었다.

박 씨의 주장에 대해 검사는  "영상에 나오듯이 딸이 농협 계좌번호를 외워서 작성하는 것을 보더라도 지적 능력이 낮거나 사회적 연령이 낮지 않다"며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일관성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허위진술을 유도하거나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판이 개시된 지 2년 만에 재심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 이유 중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성립 주장과 경찰 초동수사 당시 수집된 화물차 관련 CCTV자료가 새로 발견된 무죄에 대한 명백한 증거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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