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⑪ 국민의힘·방심위·방통위 '3각 공모' 의혹

한상진 2024. 1. 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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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MBC, KBS 등 방송사들에 대해 사상 초유의 과징금 처분 결정을 내린 과정에 국민의힘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방심위 간 ‘3각 공모’가 있었다는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9월 4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회의에서 뉴스타파 ‘김만배 녹취록’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에 대한 엄중 조치 방침이 이동관 당시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의원들 입에서 나오고, 그 직후 청부로 의심되는 민원이 방심위에 쏟아졌고, 바로 다음날(9월 5일) 방심위가 MBC, KBS 등 방송사들에 대해 긴급 심의를 결정했다.

‘엄중 조치 발언’부터 ‘긴급 심의 결정’까지 계획한 듯 하루 만에 진행됐다. 방심위는 지난해 11월 4개 방송사에 억대 과징금을 결정했다.

뉴스타파는 지난달 25일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류희림 위원장의 이른바 ‘청부민원’, ‘셀프심의’ 의혹을 연속 보도하고 있다. 류 위원장의 가족과 주변 인물 수십 명이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 기사를 심의해 처벌하라는 민원을 무더기로 낸 사실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된 공익신고서와 뉴스타파 자체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해 9월 4일 국회 과방위 회의.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과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뉴스타파 폐간”, “(뉴스타파 인용 보도 방송사에 대한) 방심위 통한 엄중 조치”를 예고했다.

공모 의혹① 국회 과방위 회의→집단 민원→긴급 심의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를 처벌해 달라는 민원을 가족과 지인 등에게 넣도록 한, 이른바 '청부 민원' 의혹을 받고 있다.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한 방송사를 처벌하는데 방심위를 동원하겠다는 발상은 지난해 9월 4일 국회 과방위 회의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김만배 녹취록을 보도한 지 무려 1년 6개월이나 지나서다.

먼저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MBC, KBS 등이 인용 보도한 것을 두고 “경마식 보도, 지능범죄”라고 말하자,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심각한 밤죄행위”라고 맞장구를 친다. 이 위원장은 ‘인터넷 매체가 퍼뜨린 가짜뉴스를 공영방송이 받아 증폭시키는 행위는 곧 악순환의 사이클’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방심위를 통해 엄중조치하겠다”는 말이었다.

가짜뉴스의 악순환의 사이클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대선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범죄행위, 즉 국기문란행위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 수사당국의 수사와 별개로 방심위 등 말하자면 이것을 모니터하고 또 감시하는 곳에서 엄중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2023.9.4.)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이어 방통위와 방심위가 나설 것을 압박한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아예 “뉴스타파를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극언을 퍼붓는다.

공모 의혹② 엉터리 JTBC민원, 오탈자까지 똑같은 ‘청부’ 의심 민원들

9월 4일 국회 과방위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방심위 온라인 민원 창구에는 지난 1년 6개월간 단 한 번도 없던 민원이 물밀듯 몰려들기 시작한다. 2022년 3월 뉴스타파 ‘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들을 처벌해 달라는 민원이었다.

그런데 민원 내용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내용이 똑같거나 비슷했고, 심지어 누군가가 미리 작성한 민원 샘플 텍스트를 그대로 옮긴 듯 오탈자까지 똑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들이 낸 민원의 상당수가 시점도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방심위의 방송사 엄중 조치를 운운한 국회 과방위 회의가 열린 지난해 9월 4일만 해도 뉴스타파와 관련된 논란은 2022년 3월 대선 당시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와 이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뉴스타파 보도 이전에 나온 다른 매체들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 관련 보도들은 관심밖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뉴스파타보다 먼저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JTBC 보도를 상대로도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했다는 이유로 심의와 징계를 요구하는 민원 글이 9월 4일 오후부터 방심위에 쇄도했다.

JTBC가 이른바 대장동 의혹과 관련, 윤석열 후보의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건 뉴스타파 보도 전인 2022년 2월 21일과 28일이었다. 그러나 2023년 9월 4일과 5일 사이 방심위에 들어온 JTBC 관련 민원들은 하나같이 ‘jtbc가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것’에 문제가 있으니 방심위에서 심의해 징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적어도 일주일에서 보름 뒤에나 나간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 황당한 JTBC 관련 민원은 이틀간 들어온 133건의 민원 중 무려 50건에 달했다.

지난해 9월 4~5일 사이 방심위에 들어온 JTBC 관련 민원글.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와 ‘지난 케이블 JTBC’로 시작되는 똑같은 내용의 민원글이 각각 27건, 5건 들어왔다.

더 큰 문제는, JTBC 보도를 심의해 달라는 이 민원들 역시 하나같이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한 MBC, KBS 등을 문제 삼는 민원 글과 같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4일과 5일 들어온 JTBC 관련 민원 50건 가운데,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로 시작해 오탈자까지 똑같고, MBC, KBS에 대한 민원 글과도 똑같은 게 모두 27건에 달했다. ‘지난 케이블 Jtbc’로 시작해 역시 오탈자까지 똑같은 민원 글도 5개나 발견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이상한 민원 글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류희림 위원장 주변 그룹의 사람들이 낸 민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로 시작되는 민원 글의 경우,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류 위원장이 대표를 맡은 경주엑스포 관계자들, 그리고 류 위원장과 가까운 보수언론계 관계자들이 낸 민원에서 같이 나왔다.

‘지난 케이블 jtbc’로 시작하는 민원글은 모두 류 위원장의 동생이 운영하는 대구 A수련원 관계자들이 낸 것이었다. ‘지난 케이블 jtbc’로 시작되는 민원 글은 언뜻 보면 ‘지난 2022년’으로 시작되는 민원과 다르게 보이지만, 문장의 첫 단락만 다를 뿐 나머지 내용은 류 위원장의 가족과 전 직장 관계자들이 MBC, KBS를 심의, 징계해 달라며 쓴 민원 글과 오탈자까지 똑같았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왼쪽)과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9월 4일에서 5일 사이 방심위에 들어온 민원 가운데, YTN을 심의·징계해 달라는 내용의 민원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지난해 9월 5일, 이 날 하루에만 총 12개의 YTN 보도를 심의·징계해 달라는 민원이 방심위에 들어왔다. 모두 현직 YTN 관계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낸 민원이었다. 그런데 민원 내용을 보니, 아예 내용이 똑같거나 일부분을 빼고는 대부분 대동소이했다.

게다가 YTN 관련 민원 11건은 모두 9월 5일 오전에 집중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주변의 다양한 그룹에서 똑같은 내용의 민원이 무더기로 들어온 점, ▲9월 4일 국회에서 뉴스타파 폐간과 방심위를 통한 엄중 조치 예고가 국민의힘 윤두현, 장제원 의원, 이동관 방통위원장 등의 입에서 나온 직후 같은 내용의 민원이 쏟아져 들어온 점, ▲바로 다음날 방심위에서 이 민원들을 근거로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들에 대한 긴급 심의가 결정된 점, ▲같은 내용의 민원이 같은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들어온 점 등을 감안하면, 누군가가 사전에 기획한 뒤 이런 민원 제기를 사주한 사실상의 ‘청부 민원’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게 아닌지 의심된다.

공모 의혹③ “뉴스타파 보도 대선 땐 문제 안 돼”...김홍일과 국민의힘 엇박자

방심위는 물론,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3일 전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와 이를 인용한 방송사 보도가 대선 결과를 바꿀 뻔했던 가짜뉴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정치공작진상규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선 때 뉴스타파의 녹취록 보도가 별 문제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아래는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발언.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그때 보면 뉴스타파 허위 조작 김만배 허위 보도 인터뷰 사건을 인지하고 계셨는지요?
(김홍일 후보자)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문제된 적은 없습니다.
(김영식) 그런데 보도가 된 건 알고 있지 않습니까?
(김홍일) 그 당시에 보도됐는지 제가 정확히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그 당시에 고발사주 소위 그 문제에 대해서 주로 법률적인 자문이나 이런 것을 했습니다.
-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2023.12.27.)

김홍일 방통위원장의 이 말은, “뉴스타파 보도는 국기문란, 국가반역”이라는 국민의힘, 방통위, 방심위의 그간 주장과 배치된다.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지는 검찰과 방송 규제·심의기관의 공세가 사실은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비판 언론의 목을 죄기 위한 정권 차원의 움직임이라는 의구심을 낳는다.

지난 3일 뉴스타파는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류희림 방심위원장을 만났다. 

지난달 25일 뉴스타파가 ‘청부 민원’ 의혹을 처음 보도한 이후 류희림 위원장은 각종 의혹엔 입을 닫은 채 공익신고자를 색출하고 고발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류 위원장에게 직간접으로 여러차례 확인 요청을 했으나 그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여러 날에 걸친 추적 끝에 결국 류희림 위원장을 만났고,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류 위원장은 “자신이 원치 않는 취재”라며 '청부 민원' 의혹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한상진 greenfish@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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