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을 공개하겠다”… 사법불신이 낳은 무차별 신상폭로

박유빈 2024. 1. 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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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제재 논란 일파만파
불법 소지 있지만 네티즌들 두둔
개인 원한 탓 신상털기도 잇따라
무고한 사람도 ‘마녀’로 낙인 피해
전문가 “잘못된 정보 유통 가능성 ↑
민관, 장기적 관점서 기준 마련을”
최근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범죄연구소’가 배우 고(故) 이선균씨를 협박해 500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 여성 A(28)씨의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과 함께 이름, 나이, 출생지 등 신상정보도 함께 언급했다. 수사기관이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하지 않은 피의자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이 잇따르면서 ‘사적제재’ 논란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적 절차를 무시한 개인적 판단은 위법행위일 뿐 아니라 법의 권위를 무너뜨려 결국 사회 기본 운영 원리인 법치주의를 무시해 ‘무법지대’로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이씨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며 유흥업소 실장 B(29)씨를 협박한 해킹범이 공갈 등 혐의로 구속된 A씨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A씨 신상정보를 공개했던 카라큘라는 전날 A씨 관련 영상을 게시하며 그가 자신을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합의할 생각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카라큘라 구독자 및 시청자는 A씨 처벌에 목소리를 높이거나 ‘신상 공개 논란에 신경 쓰지 말라’며 최근 불거진 ‘사적제재’ 논란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적제재는 헌법과 형사법상 절차가 아닌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사회적 형벌을 가하는 일을 말한다. 카라큘라는 앞서 지난해에도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강남 롤스로이스 사건 등의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유튜브 외에도 온라인상에 사이트를 만들거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개인적 원한 관계가 있거나 형사사건 피의자 신분인 사인(私人)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전례는 적잖다. 2020년 운영된 ‘디지털 교도소’는 성범죄 및 아동학대 등 강력사건 범죄자 신상을 공개했는데 무고한 사람을 성착취범으로 몰아 신상을 공개하는 문제 등이 발생해 결국 폐쇄됐다. 사이트 운영자는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경찰에 검거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범죄연구소’가 배우 고(故) 이선균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 여성 A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카라큘라 범죄연구소' 캡처
이번 카라큘라의 신상 공개 역시 명예훼손죄 등 불법 소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판사 출신인 여상원 변호사는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도 명예훼손죄는 성립한다”며 “정보가 공개된 이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도 저촉된다”고 말했다. 여 변호사는 “대부분 문제는 사익과 공익이 혼재하는데, A씨 공개가 공익적 목적이라고 카라큘라가 주장해도 형을 정할 때 법원이 감안하더라도 처벌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잘못한 사람 공개하는 게 어떻냐’ 내지는 ‘사법부 처벌이 약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서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더라이트하우스)는 “사적제재는 법치주의에 엄청난 도전”이라며 “어떤 이유로도 잘한다고 환영할 일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적제재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노의 배경은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 변호사는 “사법부가 황당하게 약한 판결을 내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을 보여준 판결이 많다”며 “사법부는 피해자의 상황과 피해 정도를 더 고민해 판결문에 담아야 하며 대중이 무엇이 미흡하다고 느껴서 (사적제재에) 열광하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인터넷상 정보 유통이 손쉬워져 잘못된 정보가 유통될 가능성도 커졌는데 우리 사회가 이에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 ‘공익적 정보’의 기준은 어떻게 규정할지 아무 논의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현재 카라큘라 같은 유튜버에게 판단을 맡긴 위험한 상태”라며 “수익성을 추구하는 구글 같은 민간기업 결정이 아닌, 플랫폼 사업자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민관이 함께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사회적 기준에 따른 용인 범위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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