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1’ 노리는 ‘넘버 3’ 감독 딸… ‘패스트 라이브즈‘는 ‘기생충’ 넘어설까
AFI상 올해의 10대 영화 등 현지 호평 이어져
백인 남성 위주 시상식 탈피도 유리하게 작용
영화 ‘넘버 3’(1997)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은 ‘세기말’(1999) 연출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2000년 캐나다로 이민 간 송 감독에게 국내 한 유명 제작자가 어느 날 국제전화를 걸어 복귀작 연출을 제안했다고 한다. 송 감독은 “딸 등하교시키며 사는 삶에 만족한다”며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연이 전설처럼 영화계를 떠돈다.
송 감독의 딸 셀린 송(36)은 캐나다 퀸즈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극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감독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가 지난해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고, 3월 열릴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주요 후보작으로 꼽힌다. ‘넘버 3’ 감독의 딸은 과연 영화계 ‘넘버 1’이 될 수 있을까.
'기생충'과 '미나리' 외국어영화상 장벽 넘을 듯
‘패스트 라이브즈’의 오스카 가는 길을 예측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이 7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재미동포 2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0)가 일궜던 성취를 넘어설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서울에서 사귀었던 두 남녀가 여자의 이민으로 헤어졌다가 20여 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골든글로브상 전망은 ‘한국계 선배 영화들’보다 더 밝다. 작품상(드라마 영화 부문)과 감독상, 여우주연상(드라마 영화 부문), 각본상, 비영어작품상(옛 외국어영화상)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기생충’은 감독상과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만 차지했다.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지명돼 이 상을 수상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후보 지명 수에서는 이미 ‘기생충’과 ‘미나리’를 넘어섰다.
골든글로브의 변신이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기도 하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를 가늠하는 주요 상으로 꼽혀왔으나 차별적 운영과 불공정한 수상 결과 등으로 도마에 종종 올랐다. 2021년 미국 영화 ‘미나리’는 대사 대부분이 한국어라는 이유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지명돼 논란이 일었다. 골든글로브를 주최하던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영어 대사 50%를 넘지 않는 영화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해 다른 부문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어서였다. 당시 ‘미나리’로 여러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던 배우 윤여정은 후보가 아예 되지 못했다. ‘미나리’는 작품상 수상까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후보 명단에 들지도 못해 인종 차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가디언은 2023년 '넘버 1 영화'로 꼽아
2022년에는 각 부문 후보와 수상자(작)를 결정하는 HFPA 내부 비리와 회원 다양성 부족 문제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톰 크루즈 등 유명 영화인들이 참석을 거부하며 그해 시상식은 비공개로 치러졌고, 이후 백인 남성 위주 회원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외국어영화상은 비영어작품상으로 바뀌었고, 작품상과 연기상 등 관련 영어 대사 규정은 사라졌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수상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신인감독이라 작품상과 감독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지 평가를 고려했을 때 각본상 수상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지난 연말 여러 상을 수상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7일 미국영화연구소(AFI)상 올해의 10대 영화상을 받았다. 10일에는 보스턴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12일에는 시카고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각각 수상했다. 지난달 22일 영국 가디언은 ‘패스트 라이브즈’를 지난해 영국ㆍ미국 개봉작 '넘버 1' 영화로 각기 꼽기도 했다. 가디언은 “재미있고도 단순한 방법으로 정체성과 사랑의 변화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다룬다”며 “잃어버린 사랑과 놓친 기회에 관한 매우 낭만적이고 슬픈 영화”라고 호평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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