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고소득자에 ‘감세 보따리’…R&D·신용카드 공제 늘려

안태호 기자 2024. 1. 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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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감세 정책(조세지출) 수는 모두 30개가 넘는다.

정부가 '긴축 재정'을 경제 정책 기조의 뼈대로 내세우는 터라 가용 수단도 감세·규제완화 등에 치우치는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정부는 이날 세수 감소 추계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 경제정책방향을 반영하기 이전의 조세지출(각종 공제·감면·비과세) 규모는 올해 77조원에 이른다고 정부가 이미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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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24년 경제정책방향’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정부가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감세 정책(조세지출) 수는 모두 30개가 넘는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이 시행되자마자 또다시 새로운 세금 감면·면제 방안을 쏟아낸 것이다.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한 정부 대책의 핵심은 대기업 위주의 감세에 맞춰져 있다. 올해 기업의 일반 연구·개발(R&D) 투자 증가액에 적용하는 세액공제율을 기존에 견줘 10%포인트 높인다. 연구·개발 투자 증가분 공제율을 한시적으로 대폭 끌어올리는 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이 올해 연구·개발 투자액을 지난해보다 1천억원 늘리면 법인세에서 빼주는 금액이 기존 250억원(세액공제율 25%)에서 350억원(35%)으로 100억원 확대된다.

올해 연구·개발 예산 4조6천억원 삭감으로 논란을 빚은 정부가 대신 기업 보조금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애초 이익이 적은 중소·중견기업은 감면받을 세금도 없는 까닭에 주로 대기업을 위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022년(신고 연도 기준) 현재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를 받은 기업 중 매출액 기준 상위 0.9%에 속하는 초대형 기업(391곳)이 받은 공제액 비중이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정부가 ‘세일즈 외교’ 성과로 강조하는 방위산업까지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해 지금보다 시설 및 연구·개발 투자 세금 감면율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방위산업도 한화 등 주로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산업이다.

정부의 소비 진작 및 민생 지원 정책도 감세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지난해 말 국회는 올해 신용카드 사용액이 전년 대비 105%를 초과하면 초과분의 10%만큼 추가로 소득공제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했는데, 올해 상반기 공제율을 20% 높이기로 했다. 다만 연간 공제한도는 기존과 같은 100만원이다.

또 10년 이상 된 노후 자동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구매하면 개별소비세를 70%(100만원 한도) 감면하는 제도를 4년여 만에 부활하고, 이달 중 부가가치세 세율 3%를 적용받는 ‘간이과세자’ 기준을 현행 연 매출액 8천만원에서 추가로 올려 자영업자 세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전통시장에 쓴 지출에 적용되는 소득공제율도 한시적으로 40%에서 80%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연체 시 가산 이자율을 인하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의 전세자금 대출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미세 지원책도 함께 담았다.

정부가 ‘긴축 재정’을 경제 정책 기조의 뼈대로 내세우는 터라 가용 수단도 감세·규제완화 등에 치우치는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나 감세 정책의 수혜가 주로 세금을 감면받을 여력이 있는 대기업·고소득층에 집중되는 까닭에 고물가·고금리로 고통받는 영세 서민과 취약 계층 등은 직접적인 지원 대상에서 대체로 빠져 있다.

나아가 감세 일변도 정책이 재정 건전성에 상충되는 측면도 있다. 정부는 이날 세수 감소 추계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 경제정책방향을 반영하기 이전의 조세지출(각종 공제·감면·비과세) 규모는 올해 77조원에 이른다고 정부가 이미 제시한 바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저성장의 골이 깊어지고 소득 양극화는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운용은 불가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감세 정책은 정부의 재정 여력을 갉아먹어 결국 정부 스스로 손발을 묶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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