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워크아웃]돈 걱정에 당국 압박까지…머리 싸맨 채권단

이경남 2024. 1. 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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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신뢰 못 얻은 태영건설 자구안에 허탈
정부, 자금회수 자제요청…도미노 위기 막아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한 태영건설 채권단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데다 태영건설이 내놓은 자구안에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하루빨리 투자금 일부를 회수해야 하지만 금융당국은 채권단의 자금회수 자제를 요청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채권단은 물론 정부 역시 '자기 살길'을 찾아야 할지, 아니면 '태영건설을 살릴 길'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채권단은 태영건설에 실망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건설에 대출을 해주거나 프로젝트 파이낸싱(PF)보증을 해 준 채권자는 약 609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500억원 이상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져)을 보유한 채권자 수만해도 60곳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영건설이 신청한 워크아웃이 개시되기 위해서는 채권단의 75%가 동의가 필요하다. 워크아웃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법원의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태영건설이 스스로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워크아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사 결정권은 채권단에게 있다. 채권단은 워크아웃이 진행되면 기존에 내어줬던 대출 등을 회수하지 못한다. 여기에 대출 이자(금리)를 낮춰주거나 갚는 기간(만기)를 늘려주면서 기업의 회생을 도와야 한다. 채권단 입장에서 워크아웃은 '밑지는 장사' 같지만, 기업이 구조조정을 잘 마무리 한 이후라면 투자 원금 회수 혹은 그 이상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단이 '밑지는 장사'까지 하려면 태영건설이 강도 높은 자구안이 선행돼야 하는데, 태영건설의 최근 행보는 채권단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 만기였던 1485억원 규모의 상거래채권액 중 451억원을 갚지 않았다. 또 지난 3일 내놓은 자구안 역시 SBS지분 매각, 핵심 계열사 매각 등 채권자들이 기대했던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채권단에서는 태영건설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태영건설이 국내 부동산 경기, 협력업체 등을 볼모로 잡고 채권단을 협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도미노' 막는게 우선순위인 정부 

태영건설과 태영건설 대주주의 최근 행보가 실망스러운 채권단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권리를 행사해 투자원금이라도 되찾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일단 급격한 자금 회수는 자제해 줄 것을 채권단에 요청하고 있어서다. 

이유는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부동산 시장 전체의 침체와 부동산PF 발 경제 시스템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도미노처럼 우리나라 경제에 파장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단기적 시각에서 보면 현재 태영건설이 운영하는 전국의 사업장은 112곳이며 협력사는 1075곳에 달한다. 태영건설이 무너진다면 태영건설과 같이 일하고 있는 협력업체들까지 줄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권은 과거 조선업·해운업 구조조정 당시 대형사들이 무너지자 관련 협력업체들에 이어 관련 산업이 몰려있던 지역 경제가 무너진 것을 봤다"라며 "이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일단 태영건설이 '일'은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태영건설 뿐만 아니라 다른 건설사 역시 부동산 PF 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문제다. 현재 금융권 안팎에서는 태영건설 이후에도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중형 건설사가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부동산 PF 부실화에 대한 우려는 이미 2022년부터 서서히 제기되기 시작했고 지난해 연체율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면서 현실화 되고 있다"라며 "다른 건설사들 역시 부동산 PF로 인해 워크아웃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결국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경제 성장이 꺾일 가능성까지 점쳐진다"고 설명했다. 

딜레마에 빠진 채권단

금융권에서는 채권단이 태영건설을 살리느냐 우리나라 경제 위기를 막느냐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당장 채권자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이를 온전히 회수하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 당장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부동산 PF발 도미노의 시작을 막기 위해서는 채권단이 태영건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줘야 한다. 

규모가 큰 은행 채권단의 경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손실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태영건설에게 내어준 채권을 모두 회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당장 위기가 발생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단위 상호금융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채권단이다. 이들은 당장 태영건설에 내어준 채권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정부와 금융당국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채권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명확한 스탠스가 필요하다"라며 "강력한 자구안 없이 채권단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워크아웃은 없다는 것을 시장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 역시 태영건설에게 채권단을 설득할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며 압박에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채권단 입장에서 태영건설이 자기 뼈를 깎아야 하는데 남의 뼈를 깍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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