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없다" 자구책 뭇매...태영 워크아웃 빨간불
[앵커]
자금 유동성 위기를 맞은 태영건설이 기업 구조 개선, 워크아웃을 위한 자구책을 내놨지만, 채권단으로부터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금융 당국이 이번 주말까지 실질적인 추가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하자 태영건설도 조치를 취했습니다.
태영건설이 처한 상황은 어떤지, 또 채권단의 입장은 무엇인지 취재기자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태영 측이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후 어제 처음으로 채권단을 상대로 자구책을 발표했죠.
창업주인 윤세영 회장까지 채권단 설득에 나섰다고요?
[기자]
네, 태영건설은 어제(3일) 산업은행에서 채권단 400여 곳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자구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태영건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구순의 나이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태영그룹 창업주 윤세영 회장이 직접 나섰습니다.
윤 회장은 워크아웃 승인 없이는 태영을 되살리기 어렵다며 눈물로 호소했는데요.
또 일부 언론에서 부동산 PF 규모가 9조 원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제 우발채무는 2조 5천억 원 정도라며 태영건설은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이번 사태는 자신을 비롯해 경영진들이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며 실책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윤 회장의 간곡한 호소문과는 달리 태영 측이 내놓은 자구책은 채권단의 마음을 얻기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당시 태영 측이 내놓은 자구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기자]
태영건설이 내놓은 자구책은 크게 네 가지인데요.
우선, 지주사인 TY홀딩스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에코비트와 블루원 매각을 추진하고, 블루원과 평택 싸이로 지분 일부를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태영 측은 계열사 매각 대금을 포함해 약 1조 5,0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태영이 자체 발표한 우발채무 2조 5,000억 원에 못 미치는 규모입니다.
채권단이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이나 지주사가 보유한 SBS 지분 매각 등을 추가로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TY홀딩스는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 여부에 대해선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고요.
SBS 매각은 현실적으로 법적 제약이 많다며 에둘러 선을 그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양윤석 / TY홀딩스 미디어정책실장(어제) : 일종의 방송법상 제약도 많고 저희가 부과받은 조건도 많고 해서…. 남은 기간 채권단이 어떤 말씀들을 주시면 충분히 검토하겠다 이런 취지로 말씀드렸고요.]
[앵커]
이런 자구책을 들은 채권단 반응은 차가웠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어제 설명회가 끝나기도 전에 몇몇 채권단 관계자들이 속속 자리를 뜨는 모습이 목격됐는데요.
이들은 기존에 언론에 보도된 것 외에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고,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았다며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채권단은 총수 일가가 3,000억 원 이상의 사재를 내놓는 등 실질적인 자구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역시 현 상황에서 채권단의 워크아웃 동의를 얻긴 어렵다며 자구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강석훈 / KDB산업은행 회장(어제) : 자구안을 제출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만 한 이걸로는 상식적으로 채권단이 이 모습으로, 이 제안으로 75%가 동의한다고 기대하긴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앵커]
특히 산업은행은 태영 측이 애초 약속한 자구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죠?
어떤 부분들인가요?
[기자]
태영 측은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 원을 태영 건설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실제로 태영건설에 건너간 돈은 400억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매각 대금은 지주사인 TY홀딩스의 채무 변제에 사용한 겁니다.
산업은행은 어제 정오까지 나머지 1,149억 원을 지급하라고 촉구했지만, 태영 측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산업은행은 이를 두고 채권단과 태영 측이 신뢰를 상실한 첫 번째 사례였다고 질타했습니다.
또 태영건설이 지난달 29일 만기가 도래한 상거래 채권 1,485억 원 가운데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협력업체가 은행에 빌린 대출 451억 원을 갚지 않은 점도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태영 측은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후부터 모든 금융채권 지급이 유예됐기 때문에 상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앵커]
어제 상황에 대한 정부 당국자들의 압박이 이어졌죠. 특히 이복현 금감원장이 강한 어조로 태영 측을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발언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이복현 / 금융감독원장 : 당국도 워크아웃 신청 시 약속한 최소한의 자구책이 시작 직후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는 데에 대해서 우려와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관련해 정부 당국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둬서) 시장 안정을 위해 최우선 노력을 하겠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태영 측의 자구책을 '오너 일가 자구 계획', '자신의 뼈가 아닌 남의 뼈를 깎는 방안'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는데요.
이번 주말까지 채권단을 설득할 수 있는 만한 자구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습니다.
산업은행도 주요 채권단 60여 곳을 소집해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입니다.
[앵커]
금융 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태영 측이 오늘 추가 자구책을 내놨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우선 사재 출연 액수를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모두 484억 원 규모인데요.
TY홀딩스는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보유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416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고 자회사 채권 매입에 30억 원 출연한다고 밝혔습니다.
창업주인 윤세영 회장도 태영건설과 자회사 채권 매입에 38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 계획이 포함됐지만, 정작 채권단이 요구한 3,000억 원에는 크게 못 미치는 규모입니다.
또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 원 가운데 기존에 지원한 400억 원에 더해 259억 원을 태영건설 유동성 지원에 투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머지 890억 원은 결국 지주사인 TY홀딩스 채권 상환에 쓰인 건데요.
TY홀딩스는 태영건설을 대신해 개인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직접 상환한 것이라며 자구안대로 매각 대금 전액이 태영건설을 위해 쓰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태영건설이 언급한 부채 규모와 채권단에서 바라보는 부채 규모가 다른 점도 짚고 넘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기자]
태영 측이 채권단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태영건설의 보증 채무는 9조 5천억 원입니다.
이게 채권단이 바라보는 전체 우발채무 규모인데요.
태영 측은 분양률이 75% 이상인 본 PF 보증은 자금 회수 가능성이 커 우발 채무에서 제외되고,
이밖에 SOC 보증과 중도금 보증, 책임 준공 확약도 우발 채무 가능성이 작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실질 우발 채무는 브릿지론 보증과 분양률이 75% 미만인 본 PF 보증을 포함해 2조 5천억 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영 측 주장이 이렇다 하더라도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은 478%에 달하고,
자기자본 대비 PF 보증 비중도 374%로 다른 건설사들과 비교해 매우 위험한 수준입니다.
[앵커]
그러면 앞으로 어떤 절차가 남았나요?
[기자]
오는 11일 채권단 회의가 분수령이 됩니다.
태영건설의 자구 노력이 충분하다는 전제 하에 채권단 75%가 워크아웃에 동의하면 곧바로 절차가 개시됩니다.
태영건설의 자산과 부채 현황을 실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 개선 계획이 작성됩니다.
이 기간이 최장 4개월가량 소요가 되고요.
이 계획을 토대로 2차 채권자 회의에서 계획 이행을 위한 약정이 체결되면 공동관리 절차가 시작됩니다.
만약 워크아웃이 무산되면 태영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태영건설이 참여한 사업장 부실을 채권단이 모두 떠안게 된다는 의미인데요.
지난해 9월 말 기준 태영건설이 참여한 PF 사업장은 60곳, 협력업체가 581곳, 이들과 맺은 하도급 계약만 천 건이 넘습니다.
당장 협력업체와 수분양자들이 피해를 보는 건 물론 건설업계 전반과 우리 경제에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YTN 윤해리 (yunhr0925@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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