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 유죄 확정…대법 “공적 기여 있지만 사적 제재”
[헤럴드경제=이명수 기자]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를 운영하며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구본창(61) 씨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사안에 대한 여론 형성에 기여한 면이 있다면서도, 사적 제재의 하나로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가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판결을 4일 확정했다.
선고유예는 범죄 정황이 경미한 자에게 일정 기간 형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해주는 면소(免訴) 처분을 받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구씨는 2018년 9∼10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를 받은 사람 5명의 사진을 포함한 신상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 5명이 검찰에 구씨를 직접 고소해 수사가 시작됐으며 실제로 구씨가 공개한 대상자는 더 많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도 전부 무죄로 평결했다.
2심 법원은 그러나 구씨의 행위가 '사적 제재'로서 현행법에 어긋난다며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다만 범행 경위에 참작할 점이 있다며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구씨가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2년 가까운 심리 끝에 배드파더스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인 '비방할 목적'이 인정된다고 보고 이날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배드파더스에 대해 "결과적으로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주된 목적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해 의무 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취지로서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측면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피해자들은 공적 인물이라거나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 등을 수인해야 하는 공직자와 같다고 보기 어렵다"며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하더라도,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가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배드파더스의 신상 공개 결정이 양육비를 받지 못한 채권자 일방의 의사에 좌우됐으며 스스로 사이트 운영 목적을 '양육비를 주도록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점, 별도의 사전 확인 절차나 양육비 지급 기회를 미지급자에게 부여하지 않은 점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또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이나 구체적인 직장명, 전화번호 등 상세한 정보까지 공개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양육비 지급에 관한 법적 책임을 고려하더라도 피해의 정도가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구씨가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한 지 3년여 만인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 이행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은 현재 공적인 절차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공개하는 양육비 채무자 명단에는 이름, 생년월일, 직업, 근무지,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간, 채무금액 등 6개 항목이 포함되며 얼굴 사진 등은 공개되지 않는다.
구씨는 법 시행에 따라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폐쇄했다가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켜 여전히 미지급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구씨는 판결 선고 직후 취재진에 "신상 공개는 누군지 특정이 돼야 효과가 있는데 (양육비이행관리원의 공개 방식은) 특정되지 않으니까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사이트가 다시 오픈한 것"이라며 "아이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것인데도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개 과정에)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미지급 사실을 법원 서류를 통해 판단했고 (공개 대상자에게) 사전 통보했다. 그래서 미지급자가 아닌데 신상이 공개된 게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구씨에게 양육비 미지급 사례를 제보하고 SNS에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를 게시했다가 함께 기소된 A씨는 이날 벌금 70만원이 확정됐다.
husn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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