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했던 피아노 거장, 장난꾸러기로 돌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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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완벽주의자로 유명하지만, 이날만큼은 장난꾸러기 완벽주의자였다.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8)은 행여나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긴장한 관객들에게 서정적 연주와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며 내한 독주회를 무사히 마쳤다.
그는 쇼팽 녹턴(야상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2번 Op. 9-2로 시작해 한층 깊은 감성의 5번 Op. 15-2 등 녹턴 총 4곡을 연달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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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 울리면 연주중단했지만
이번엔 다리 힘 풀린 시늉 등
익살스럽게 관객과 소통 눈길
까칠한 완벽주의자로 유명하지만, 이날만큼은 장난꾸러기 완벽주의자였다.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8)은 행여나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긴장한 관객들에게 서정적 연주와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며 내한 독주회를 무사히 마쳤다.
'무사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악명 높은 그의 완벽주의 성향 탓이다. 1975년 19세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래 세계 무대에서 무결점 연주를 선보여왔는데, 독주회 때마다 자기 피아노를 직접 옮겨 다닐 정도로 음향에 예민하다. 소음 등으로 방해받으면 공연을 중단해버리기도 한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유럽에서 공수해온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쳤다. 공연 전 주최 측 마스트미디어를 통해 깐깐한 관람 수칙도 공지했다. 커튼콜 촬영과 녹음까지 전면 금지에,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알람과 진동도 울리지 않게 해달라는 신신당부 등 '연주자의 강력한 요청'이었다.
다만 무대 매너만 놓고 보자면 지메르만은 이날 오히려 인자하고 유머러스했다. 그는 쇼팽 녹턴(야상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2번 Op. 9-2로 시작해 한층 깊은 감성의 5번 Op. 15-2 등 녹턴 총 4곡을 연달아 연주했다. 이때 곡 사이에 일부 관객의 크고 밭은기침 소리가 터져 나오자, 객석을 향해 '더 하라' '편히 하라'는 듯한 손짓을 취해 보였다. 드뷔시 '판화' 연주 중 악장 사이엔 본인도 기침했다. 객석은 곡 사이 기침 소리를 제외하면 대체로 조용한 집중력으로 연주에 빠져들었다. 그 덕분에 지메르만이 만들어내는 음과 음 사이의 여운까지도 공간을 충분히 울렸다.
지메르만의 쇼팽은 묵직함이 돋보였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2번의 1악장 도입부와 '장송행진곡'으로도 불리는 3악장 등에서 느린 빠르기로 꾹꾹 건반을 누르며 웅장한 소리를 전달했다. 이 곡은 쇼팽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됐다는데, 당시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조국 폴란드에 대한 망국의 슬픔과 떠나간 이들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이날 연주에 대해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운 서정성이었다"고 평했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곡인 폴란드 작곡가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폴란드 민요 테마에 의한 변주곡 Op. 10'이었다. 주제 선율을 토대로 총 10개의 변주곡이 이어지면서 점점 더 입체적이고 격정적인 분위기로 치닫는다. 후기 낭만주의와 폴란드 민족정신이 고루 담겨 '쇼팽의 유산'이라고 불릴 만한 정체성 짙은 선곡이다. 지메르만은 영롱한 음색을 만들다가도 격정적인 구간에선 발 구르는 소리로 무대가 울릴 정도로 힘을 실어 타건했다.
연주가 다 끝난 후엔 객석을 향해 서서 익살맞게 다리에 힘 풀린 시늉도 했다. 객석 조명이 켜지고 어수선한 와중에도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이어지자 무대로 돌아와 총 2곡의 앙코르를 선물했다. 연주 후엔 건반 뚜껑을 직접 닫으며 '진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긴장 반 기대 반으로 객석을 지킨 관객들은 잇단 지메르만식 유머에 웃음을 터트렸다.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만큼 이날 객석엔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박재홍 등이 자리했다. 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등 정치인 목격담도 나왔다. 지메르만의 내한 독주회는 5일과 1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7일 대구 달서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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