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위탁계약 종료···강북노동자복지관 떠나는 노조들[빼앗긴 공간, 밀려난 사람들③]
지난 3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 곳곳에는 명도 고시 공문이 붙어있었다. 텅 빈 사무실도 눈에 띄었다.
“노동자에게 가장 큰 복지는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인 것처럼 매도된 것에 화가 납니다.”
사무실 벽에 붙은 명도 공문을 보던 이규철 전국금속노동조합 조직국장이 말했다. 이 국장은 이곳에서 노동자 밀집 지역에 쉼터 조성 사업 등을 해왔다. 그러나 이 국장과 노조 사무직원 10여명은 이달 말 이곳을 떠난다.
서울시는 민주노총과 20년 넘게 이어온 강북노동자복지관 위탁 계약을 지난해 9월23일 종료했다. 2002년 복지관 개관 때부터 지금껏 2~3년마다 계약을 연장했지만 지난해 심사에서 새 수탁업체를 선정한 것이다. 새 사무실을 찾아 떠난 노조도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아직 이곳에 머무는 이들도 있다.
2002년 개관한 강북노동자복지관은 2022년 6월 한 차례 리모델링 후 재개소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전국금속노조·전국건설기업노조·이주노동자노조 등 12개 노조가 이곳에 모여 일했다. 노동자를 위한 복지프로그램 개발 등이 주 업무였다. 서울시 노동정책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도 해왔다
2021년 말부터 복지관 운영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졌다. 일부 언론이 ‘기득권 노조가 노동자 복지와 관계 없이 복지관 사무실을 이용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시의회는 지난해 복지관 지원 예산을 30%가량 삭감했다. 수의 계약 형식으로 이어져 오던 위탁운영 계약은 공개 입찰 방식으로 변경됐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4월 “근로자종합복지관 102곳의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54곳의 노동조합 사무실이 정부 지침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보조를 맞췄다.
이 국장은 “여러 언론에서 노조가 마치 복지관을 배타적으로 사용해온 것처럼 매도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중 우리를 직접 찾아와 취재한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김호정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법률상담,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문화교육교실 등을 운영해왔다. 귀족노조가 사무실을 독점한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다.
지난 7월 진행된 위탁사업자 적격자 심의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2순위 협상대상자로 밀려났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24일까지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공문을 민주노총 측에 보냈다. 비우지 않을 시 규정에 따라 사무실 이용료의 120%에 해당하는 변상금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복지관에 남아있는 노조를 대상으로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박순흥 민주노총 서울본부 총무국장은 “계약 연장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던 터라 따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새 사무실이 결정되는 대로 이곳을 비우려고 하지만 아직 적절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면서 “지금까지 부과된 변상금 총액은 약 1500만원 정도다. 새 사무실을 구하기 위한 조합원 모금 운동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박 총무국장은 “무엇보다 모여있던 노조가 흩어지는 게 안타깝다. 함께 모여 의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입주를 결정한 노조들이 많았는데 앞으로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서울시의 ‘반노조’ 기조가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김호정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은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가 전태일기념관 예산을 삭감하고, 시 산하 사회서비스원을 구조조정한 것 등을 보면 노동·돌봄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 조직국장은 “노동자의 아픔과 불편함을 가장 잘 아는 건 노동조합”이라며 “우리가 이곳을 떠난 뒤에라도 서울시가 노조와의 협의를 긴밀하게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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