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SF·평론 작가들 "있으나마나한 예술인산재보험 고치랬더니…"
'100% 본인부담에 임의가입' 개선 예술인 요구에 '임의가입 활성화'로 답한 정부
작가노조 준비위·문화예술노동연대 등 "사업주가 책임지고 당연적용 실시하라"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세상에 어떤 산재보험이 별도 자격증명을 요구하고, 노동자 본인이 보험료 전액을 부담한단 말입니까?”
예술인 산재보험에 10년 넘게 제기돼 온 유명무실 논란에 정부가 불을 지폈다.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 등 예술인이 잇달아 숨진 뒤 도입됐지만, '100% 본인부담에 임의가입'으로 '달빛요정과 최고은도 가입 못 한다'는 지적이 나왔던 터다. 오랜 개선 요구에 정부가 되레 '임의가입 법제화'를 들고 나오면서 현장 예술인들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작가노동조합 준비위원회와 문화예술노동연대 등 문화예술 노동단체들은 4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예술인 산재보험 '임의가입 법제화' 시도를 멈추라”며 “사업주가 보험료를 책임지는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라”고 요구했다.
예술인 산재보험은 올해로 시행 12년을 넘겼지만 결실은 초라하다. 가입자는 5%에 못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2021 예술인 실태조사).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정책위원장은 “정부는 가입률이 30%에 가깝다고 발표하고 기자 분들도 그렇게 기사에 썼다”며 “실상 직장가입, 즉 근로자 25%를 빼면 (당초 정책 대상) 예술인의 산재보험 가입은 3.5%”라고 짚었다. 그는 “사실 예술인들은 예술인 산재보험이 있는지도 모르고, 안다 해도 전혀 실효성도 없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회견 현장엔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큰 웹툰과 웹소설, 평론가, 방송작가 등 작가들이 다수 참가했다. 작가노조 준비위원이자 평론가인 성상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일하다 다치고도 산재보험 적용 받지 못한 작가들 발언을 소개했다.
“예술인 산재보험의 가장 큰 단점이 계약서를 쓴 경우에 한한다는 겁니다. 칼럼이나 평론 쪽에 계약서 쓰고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작업 때문에) 5일 밤을 샜다가 뇌전증이 발발했는데 초반 기억이 두 달 정도 날아갔거든요. 예술인복지재단에 치료비 청구할 수 있냐 했더니 기한이 지나서 안 된다는 소릴 들었죠. 상담하다 보니 저는 (당초) 산재 입증조차 못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 '덕립선언서'를 쓴 서찬휘 평론 작가
“오십견, 손목·팔꿈치 통증,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하고 안과 질환, 두통·치통 등 스트레스성 질환 산재 인정이 시급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도 고용주가 부담하는 산재보험이 적용되는데 예술인은 똑같이 프리랜서인데 자기가 100% 부담해 가입해야 하면 같은 노동자로서 부당하지요.”
- '저주토끼'를 쓴 정보라 SF 작가
성상민 활동가는 “(보험료 지원 받으려면) 예술활동증명과 같은 별도 자격증명을 요구하고, 노동자 본인이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며, 의무가입 원칙을 거슬러 임의가입으로 운영되는 누더기가 10년 넘게 이어졌다”고 했다.
염정열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방송작가들에게 예술인 산재보험은 있으나 마나”라며 “현재 예술인산재보험은 방송작가에게 흔히 나타나는 직업병을 보장하지 않는다. '깨지고 찢어지고 부러지는' 등 보이는 질환이 아니란 이유”라고 했다. 그는 “방송사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비로 치료받고 입원하며, 일하지 못하면 원고료도 받지 못한다. 운 좋으면 PD나 방송사가 치료를 마칠 때까지 다른 작가로 대체하지 않고 기다려주거나 일부 위로금을 받는다”라고 했다.
웹툰과 웹소설 작가도 다수가 극단적 노동환경에 시달린다. 정화인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자지회 사무장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즐겨보는 독자라면 누구나 '작가 건강 사정으로 휴재한다'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무분별한 비방과 '최근 페미니즘 사상 검증'까지, 대중의 공격과 감정노동 요구에 시달려 자살계획·경험 수치가 평균치의 4배에 달하지만 플랫폼도 CP(Contents Provider)사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산재보험 가입이 절실하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개선안으로 예술인들 요구에 반대되는 안을 제시하면서 현장에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난 2022년 예술인들의 개선 요구 끝에 7차례 노사정 포럼이 열렸지만, 지난해 정부가 당사자들을 배제하면서 정책을 '임의가입 활성화'로 정했다.
안명희 정책위원장은 “현장 노동자들은 산재 실태를 드러내고 산재보험 설계 방향도 밝혀왔다. 그 핵심은 산재 책임이 있는 사업주가 100% 보험료 부담해야 하고, 당연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현장을 배제하고 2023년부터 부처끼리 논의를 진행하더니, 12월 토론회에선 '임의가입 활성화를 지원하고 법제화하겠다'는 내용으로 답해왔다”고 했다.
정부가 '일부 예술인부터 점진, 단계적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점도 문제다. 안 정책위원장은 “무용수와 연기자, 스태프 등 '사고 많은 분야'부터 우선적용하겠다고 하는데, 창작자 노동이 위험하지 않다는 건 편견이다. 웹툰작가가 뇌출혈로 사망했고, 문학작가와 방송작가도 현장에 나간다”고 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공약으로 걸었다. 현재로선 임의가입을 제도화하겠다는 뜻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라도 논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현장 예술인과 함께 결정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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