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서 짐 싸는 홍원식 회장의 3가지 패착

지영호 기자 2024. 1. 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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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2021.5.4/뉴스1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60년간 이어온 경영권을 잃게 된 배경에는 오너 집중형 기업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숱한 리스크가 발생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등 떠밀린 기업매각'까지 갔다는 분석이다. 남양유업 경영권을 둘러싼 국내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이하 한앤코)와의 소송에서 최종 패소함에 따라 홍 회장은 그동안 날아온 수많은 청구서도 물어내야 할 처지가 됐다.

오너 독단적 결정구조...여론 관리도 실패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홍 회장이 남양유업 경영권을 상실하기까지 크고 작은 리스크가 반복됐지만 가장 큰 배경엔 기업문화가 있다. 대체로 오너기업이 가지고 있는 독단적 결정구조가 특히 강하게 형성돼 있는 기업이란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례로 그동안 남양유업의 이사회는 홍 회장 일가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불가리스 사태가 발생한 2021년 기준 남양유업은 6명의 이사진을 뒀다. 그 중 4명이 사내이사인데 홍 회장을 포함해 모친 지종숙씨, 장남 홍진석 상무 등 3명이 홍 회장 일가다. 나머지 1명도 홍 회장의 심복으로 불리는 이광범 대표다. 남양유업이 영입한 사외이사 2명은 거수기 역할을 했다.

남양유업의 오너 중심 경영은 직위에서도 드러난다. 통상 기업들은 사장을 대표이사로 임명하지만 남양유업은 상무가 대표이사다. 이광범 대표 역시 상무 직위다. 사장과 부사장, 전무 등이 없고 상무가 대표로 있다보니 주도적 결정이 어려웠다는게 내부 분위기다.

오너집중형 조직체계는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불가리스 사태뿐 아니라 대리점 갑질 사건이나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의 마약 사건, 매일유업 비방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사안을 외면하거나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화를 키웠다. 상장사임에도 흔한 IR(기업홍보활동) 관리도 하지 않았다. 증권사에는 남양유업 담당 연구원조차 없었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1.10.8/뉴스1
소탐대실...가족 지키려다 신뢰·명예도 잃어
불가리스 사태로 기업매각 카드를 꺼내든 홍 회장은 한앤코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가 '헐값 매각' 논란이 커지자 계약을 취소했다. 불가리스 사태로 인한 여론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매각을 결정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한앤코와의 지분매각 계약은 일가 지분 53%를 3107억원에 넘기는 조건이다. 자산규모 1조원에 이익잉여금 8600억원, 부채비율 16%의 건실한 회사를 이 가격에 거래한다는 것은 한앤코에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이란 여론이 형성됐다.

홍 회장 측은 한앤코에 계약해지를 통보할 당시 이면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면계약은 홍 회장 일가와 연관이 있다. 외식사업부인 백미당 매각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과 가족들의 임원 처우 보장, 재매각시 우선협상권 부여 등이다. 백미당은 부인 이운경 고문이 애착을 가졌던 사업이고, 회삿돈 유용 의혹으로 보직해임된 장남 홍진석 상무는 '몰래 복직'을 할 정도로 회사에 애착이 있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이면계약은 한앤코의 서명이 들어가 있지 않은 홍 회장의 생각을 정리한 메모로 드러나면서 패소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내부에서는 홍 회장이 불가리스 사태로 궁지에 몰리자 독단적으로 기업 매각을 결정했고, 헐값 매각 여론이 일고 가족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계약파기를 선언한 것이라고 본다. 가족 몫을 챙기려 소송까지 불사했지만 신뢰와 명예까지 모두 잃게 된 셈이다.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22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남양유업 본사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한앤컴퍼니(한앤코)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가족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양도 소송에 대해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남양유업 주식을 사모투자펀드 한앤코로 넘겨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홍 회장 측은 앞선 세 차례의 가처분 소송과 이번 본안 소송 1심에서 모두 패하며 남양유업과 백미당 운영에서 손을 뗄 위기에 몰렸다. 2022.9.2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수 모면하려 악수 반복...조건부 계약맺은 위니아까지 휘청
남양유업 내에서 홍 회장에게 제대로 직언할 참모진이 없다는 점은 그가 계속 실수를 반복하는 배경이 됐다. 회사 매각이라는 중대한 결정에 임원진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매각의 중요한 역할을 남양유업 임원이 아닌 함춘승 피에이치앤컴퍼니 사장이 맡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함 사장은 법정에서 홍 회장의 의사에 따라 계약을 중개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이면계약이나 쌍방대리에 대한 홍 회장 측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언도 했다. 개인적 친분에 의한 외부인사를 매각계약의 핵심로 삼은 홍 회장의 패착이었다.

실수를 모면하려는 홍 회장의 노력은 계속된 악수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유위니아와의 조건부 매각 계약이다. 홍 회장은 한앤코와의 계약해지 통보 이후 남양유업의 새 인수 후보로 대유위니아그룹을 낙점하고 대유 측의 자문단 파견을 허락했다. 하지만 법원이 남양유업과 대유위니아와의 양해각서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상황은 또다시 꼬였다.

대유위니아는 남양유업 지분을 3200억원에 양도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320억원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법원의 효력 정지로 남양유업과의 계약이 이행되지 않자 계약금을 돌려달라며 반환소송을 진행 중이다. 1심에선 홍 회장이, 2심에선 대유위니아가 승소했다.

제 때 쓰여야 할 돈이 묶이면서 대유위니아그룹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위니아전자(옛 대우전자) 임금체불을 시작으로 위니아(옛 위니아만도)와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그룹 전체가 위기에 놓여있다. 홍 회장의 섣부른 판단이 다른 업종의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홍 회장은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대유위니아그룹과의 최종심과 남양유업 경영권 이양 지연 등을 이유로 한앤코가 제기한 5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만간 막대한 금액의 청구서를 받아야 할 처지다.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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