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아토피 치유하며 한 발짝씩 활동가 변신”

서울앤 2024. 1. 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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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식생활개선 강사로 활동하는 성미선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서울&] [다시, 시작]

식생활개선 강사로 여러 활동을 하는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성미선씨. 강정민 작가

21년 전 갓 태어난 둘째 얼굴 붉어지자

아토피 면역력 높이려 풍욕 등 배우고

친환경 급식하는 공동육아로 키워내

“채식만 해도 체력 향상” 경험하기도

거실을 생협 모임방 내주며 활동가 돼

시민강좌로 공장식 축산 문제점 알고

“미래 위기 걱정만 말고 실천하자” 다짐

먹거리 싸들고 가 ‘생태농업 얘기’ 풀어

식생활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성미선(54)씨는 약속 장소에 큰 보따리를 세 개나 들고나왔다. 보따리 속에 담긴 것은 잡채와 김밥으로 오후 성씨가 참여할 행사에서 사용할 것들이었다. 환경 관련한 여러 활동을 하는 그는 특이하게도 2020년에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씨의 복직을 위해 40일간 단식한 일도 있다.

성씨에게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물으니, 21년 전 둘째가 태어났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아기 태어나고 한 달 됐을 때 얼굴에 벌겋게 올라오더라고요.” 소아과의사는 아토피 연고를 보여주며 자기 아이들에게도 로션처럼 발라주는 연고니 안심하고 쓰라고 했다. 그는 연고를 아기 온몸에 정성껏 발라줬고 약효는 좋았다.

연고를 다 쓰고 일주일이 지나자, 아기 몸이 다시 벌겋게 올라왔다. 연고를 처방받으려고 만난 가정의학과 의사는 아토피는 면역력을 키워야 해결하는 병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수수팥떡’ 사이트를 통해서 면역력을 키우는 풍욕, 족욕 등을 배웠다.

성미선씨가 들고나온 보따리 세 개. 보따리 속에는 다음 모임에서 쓸 잡채와 깁밥이 들어 있다. 강정민 작가

모유를 수유하는 그는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고 식재료도 친환경 생협(이후 생협)에서 샀다. 그래도 둘째는 밤이 되면 몸을 긁었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는 차츰 좋아졌다.

아이를 친환경 재료로 급식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고 학교도 대안학교를 보냈다. 그가 대안학교를 선택한 것은 대안교육의 원칙에 깊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채식만 했지만 또래보다 체력이 좋았다. 어린이집 다닐 땐 한 시간씩 걸어 하원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거실을 생협의 지역 모임 장소로 내주고 사람들과 밥상을 함께 나누며 활동가가 되어갔다. 2012년 아끼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지인은 경기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처장으로 당원 1천 명을 모아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 가입서만 써줬다. 2년 뒤 지자체 선거에서 그가 속한 경기도 과천 시민단체들은 여성 시의원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선거 결과 시민 후보가 3등으로 시의원이 됐다. 이런 활동 덕에 과천 주민들의 의견이 시정에 많이 반영됐다.

성미선씨가 싸온 채식 김밥. 강정민 작가

2018년 과천 주민들은 ‘과천 시민정치다함’(이후 다함)을 만들어 선거를 준비했다. 성씨도 녹색당 당적으로 ‘다함’의 시의회 비례대표 후보가 됐다. 성씨를 포함해서 과천에는 총 4명의 ‘다함’ 후보가 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선거구에 두 명씩 후보를 공천하면서 다함의 후보는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그 후 다함의 선거 대응이 안이했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성씨는 모유 수유 이후에도 채식을 이어가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활동하다보면 외식할 일이 많았고 그러다보면 고기를 먹게 됐다. 그렇게 채식에 실패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2018년 기후위기 강좌를 과천에서 주민 공모사업으로 열었다. 수강생을 모으려 지역을 싹싹 훑었고 그런 노력 덕에 첫 강의에 72명의 수강생이 참석했다. 강의 기획 단계에선 식생활 관련 내용을 강좌에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며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알게 됐고 식생활 개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만든 황윤 감독이 쓴 책 <사랑할까, 먹을까>(휴 펴냄, 2018년)를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다. 무엇보다 성씨는 반려견 ‘까비’를 키우며 동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지금 성씨는 완전 비건(채식주의자)이다. 살림하며 채식을 실천하는 게 어렵지 않은지 물었다. “성인인 아이들은 고기가 먹고 싶으면 알아서 사다 먹어요.”

성미선씨는 사진 속 ‘팔당생명살림 두레생협’의 산하단체 ‘팔당식생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한다. 강정민 작가

4년 전 그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가 운영위원장을 맡았을 때 가족의 반응이 궁금했다. “우리 남편은 새벽별 보고 출근하는 사람이에요. 첫째가 5살 때도 아빠를 낯설어해 명절 때도 제가 안고 갔어요. 운영위원장이 된 뒤에도 아이들 잘 키웠는데 뭐 할 말이 있겠어요?” 성미선씨의 남편이 아내를 믿고 존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2020년 말 성씨의 어머니가 암 수술을 해 성씨가 두 달간 병간호를 한 일이 있었다. 병간호 마치고 집에 왔는데, 송경동 시인에게 전화가 왔다. 12월22일에 광화문에서 시민사회단체가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씨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단식에 들어가자는 제안이었다. 송 시인은 단식을 열흘로 예상했다. 김진숙씨가 만일 해고되지 않았다면, 그해 말이 정년퇴직이라 김진숙씨가 복직할 수 있는 기간이 열흘 정도 남아 있었던 거였다. 열흘간 단식은 가능할 거 같았다.

그는 젊은 시절 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활동하며 알게 된 김진숙씨에 대해 부채 의식이 있었다. 그도 녹색당을 대표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은 예상을 깨고 다음해 1월 말까지 갔다. 늦은 나이에 단식을 했는데 몸은 어떤지 물었다. “제가 2022년에 들어서서야 양말 벗고 생활할 수 있었어요. 2021년까지는 발이 차서 양말을 못 벗었어요.”

성미선씨가 차린 채식 뷔페 상차림. 성미선씨 제공

그의 삶은 단순하다. 미래의 위기를 알게 됐으니 앉아서 걱정하기보다 실천하는 거다. 성씨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힘은 무엇일까? “사람인 거 같아요.” 그는 사람을 위해 마음과 음식을 내놓았다. 운전도 못하면서 전국 어디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먹을거리를 싸 들고 가서 환경과 식생활에 대해 그리고 생태와 농업, 인권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여성농민회 회원을 상대로 요리 강의도 한다. 활동비는 어떻게 감당하는 걸까? “주로 강사료로 충당하고요. 가끔 채식 출장뷔페 요청이 들어오면 그 일도 하고요.”

성미선씨의 반려견 ‘까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살아 있을 때 모습. 성미선씨 제공

기후위기나 생태 문제는 어느 하나를 해결한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신발을 보여주며 말했다. “신발 살 때도 인조가죽인지 물어봐요. 요즘은 인조가죽 찾기도 쉽지 않아요.” 가게 직원은 그런 그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성씨는 자신의 요리 재능을 살려 채식 요리를 더 멋지고 맛나게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가 만든 채식김밥을 보며 든 생각이다. 둘째를 키우며 성씨는 삶의 변곡점을 맞았다. 그는 강의와 음식으로 세상에 말을 걸고 소통하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활동가다. 성미선씨가 2024년엔 어떤 활동을 할지 궁금해진다.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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