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칼라일그룹' '부자언니' 사칭 사기에 120억 뜯겨…경찰 수사착수

일명 '부자언니'로 알려진 유수진씨(오른쪽)을 사칭해 주식투자를 유도한 사기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유명 금융인이나 다국적 금융사를 사칭해 100억원대 주식 투자 사기를 벌인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 말부터 인스타그램 등에 나타난 유명인 사칭 광고가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로,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액만 약 1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전국 경찰서에 접수된 유명인 사칭 주식투자 사기 사건을 이첩받아 수사 중이다.

지난달 초부터 전국 경찰서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일명 '부자언니'로 알려진 금융인 유수진씨 △다국적 금융회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수석애널리스트 박모씨 △ 대학 교수 △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등을 사칭해 주식 정보를 제공하며 투자를 유도한 후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사건 접수가 잇따랐다.

유명인을 사칭한 SNS 계정은 네이버 밴드로 이어지는 웹주소를 걸어놨다. 해당 밴드에선 '매니저'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주식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폐쇄적인 텔레그램 채널에 입장하도록 했고, 자신들이 만든 '가짜 주식 거래' 웹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애플리케이션(앱)을 휴대폰에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이 같은 과정은 '작전 세력' 등이 공유하는 고급정보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기 위해 보안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며 피해자들을 속였다.

경찰이 유수진, 칼라일 그룹 등을 사칭하고 가짜 주식거래 웹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속여 투자금을 가로챈 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피해자들이 사용한 가짜 주식거래 웹페이지. /사진=독자 제공

피해자들은 해당 앱과 웹페이지에서 일명 '단타' 거래, AI(인공지능)거래를 포함해 IPO(주식공개) 청약 등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제공한 앱은 실제 주식거래와는 무관했다. 앱에선 종목을 설정해 주식을 사고 팔며 주식 등락과 투자금에 따른 이익률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주식거래가 이뤄진 것이 아니고 앱이나 웹페이지에서 꾸며낸 수치일 뿐이었다.

특히 이들은 지난달 초 곧 상장할 LS머트리얼즈 공모주를 1주당 4400원에 일반 청약보다 많이 배정 받을 수 있다고 속였다. 공모주 청약을 신청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LS머트리얼즈 청약 당첨 배당 물량'이라며 1인당 약 10만~100만주를 배당했다. 1인당 10만주가 넘는 공모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기존 수익금 등 자금을 동결하겠다며 피해자를 압박해 추가 입금을 유도했다.

공모주 청약과 배당 역시 가짜 거래사이트와 앱에서 꾸며낸 거래였다. 이들은 출금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2주~4주간 자금이 동결된다"며 수익금 지불을 거부했다.

실제 LS머트리얼즈가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한 공모주 청약은 약 1164.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일반투주자는 균등배정을 통해 각각 2~3주 내외를 배정받는데 그쳤다.

지난주 전국 각지의 경찰서에서 20여명이 넘는 피해자가 해당 가짜 주식거래 페이지와 앱을 이용한 사기 범죄로 약 30억원에 달하는 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피해를 접수하자 경기북부경찰청을 집중수사 관서로 지정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현재 경찰은 이들이 사용한 가짜 주식거래 앱과 웹 페이지 등을 3종류로 특정하고, 해당 앱을 통해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사건을 동일사건으로 보고 있다.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한편 금융계좌와 IP 등을 추적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전국 경찰관서에 피해신고를 마친 투자자만 150여명 이상이고 피해액은 120억원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에서 사건이 경기북부청으로 도착하고 있어서 정확한 피해규모 파악이 어렵다"고 했다.

한편 사기 범죄에 이용된 가짜 주식 거래 앱과 웹페이지는 현재도 접근이 가능하다. 가짜 주식거래 웹페이지는 실시간 코스피 등락률과 개별 종목의 주가 등이 실제 주가 정보와 동일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름을 사칭당한 유수진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요즘 사칭광고가 많다던데 조심해달라"며 "저는 그 어떤 투자권유도 하지 않으니 피해 없길 바란다"고 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