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대성전에 김대건 신부像…조각가 한진섭 “신이 이끈 기적”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1. 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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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 한진섭 개인전
바티칸 최초 亞성인상 설치
김대건 성상 작업과정 선봬
신앙 주제 조각작품도 20점
조각가 한진섭 작가가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가 열린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된 3.77m 높이 김대건 신부 성인상을 58㎝ 높이로 만든 작품(왼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 만들어진 지 550년 정도 됐다. 그때부터 비워져 있던 자리다. 마치 처음부터 성(聖)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를 위한 공간이었던 것처럼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한진섭 작가는 지난해 9월 바티칸 시국의 세계 최대 규모의 가톨릭 대성당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한 김대건 신부(1821~1846) 성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2년 전 조각상 제작을 의뢰 받아 높이 3.77m 규모의 성상을 조각하고 대성전에 설치하기까지 모든 순간이 신이 이끈 기적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19세기 조선의 김대건 신부는 1846년 당시 25세의 나이로 순교한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다. 김대건 신부 성상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전신상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의 4.5m 높이 아치형 벽감(壁龕·벽면을 안으로 파서 만든 공간) 안에 설치됐다.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닌 성당인 대성전(바실리카)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진섭 작가의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가 오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린다. 10년 만에 개최되는 이번 개인전에서 한 작가는 김대건 신부 성상의 작업 과정을 실제 바티칸 교황청에 제출했던 모형과 관련 사진·영상, 기록 등을 통해 선보였다. 이와 함께 대성전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을 높이 58㎝ 크기로 축소해 조각한 작품과 십자가상, 성가정상 등 가톨릭을 주제로 한 조각 작품 20점이 전시됐다.

지난해 9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조각가 한진섭 작가가 작업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성인상의 설치를 기념해 열린 축복식에서 사물놀이가 펼쳐진 모습. 가나아트센터
한 작가는 시대적 배경과 문헌 기록을 토대로 김대건 신부의 생전 모습을 떠올려 이를 형상화했다.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양팔을 벌려 아래를 내려다 보는 김대건 신부의 모습은 모든 것을 포용하듯 인자한 모습이다. 여백의 미를 살린 단순한 형태는 단아하고 갓과 도포의 곡선은 부드럽다. 성상 아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라고 한글로 적힌 명문 글씨도 한 작가가 성상에 어울리도록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그는 이번 작업의 기념비적 의미를 잘 알기에 부담이 더 컸다고 했다. 그 무게만큼 더 심혈을 기울였다. 작업에 적합한 돌을 구하는 데만 5개월. ‘비앙코 카라라’라는 대리석의 고장인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 곳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작품보다 큰 높이 4m, 폭 2m 이상의 거대한 돌이 필요했다. 한 작가는 “충분히 크면서도 깨짐과 무늬가 없고 따뜻한 느낌의 색감과 내구성까지 갖춰야 했는데 넓은 평야에서 기적처럼 꼭 맞는 돌을 찾았다”며 “미켈란젤로가 ‘피에타’ 조각상에 사용한 돌보다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트라산타에 머물면서 8개월에 걸쳐 성상을 완성했다. 한 작가는 “김대건 신부의 담대하면서도 겸손하고 포용력을 가진 얼굴을 표현해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제대로 된 사진이나 초상화가 없었고, 워낙 작품의 크기가 크다 보니 바짝 눈앞에서는 그런 얼굴로 보였는데 막상 밑에 내려와서 보면 아니고 하루에도 수백 번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디테일을 잡아나갔다”고 말했다.

조각가 한진섭 작가가 높이 3.77m 크기의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성상을 올려다 보고 있다. 이 성상은 지난해 9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됐다. 가나아트센터
이번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는 유흥식 대주교 추기경이 이끌어냈다. 유 추기경은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성상 설치를 추진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당초 교황청은 다른 성상들과의 조화를 고려해 이탈리아 조각가에게 제작을 맡기려 했다. 하지만 이때도 유 추기경이 한국 성인은 한국 작가가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교황청을 설득했다.

한 작가는 교황청 측의 요청으로 이력서를 제출했고 이후 수개월에 걸친 까다로운 검토 끝에 바티칸으로 초청됐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10년 간 유학을 했던 것도, 가톨릭 신자가 된 것도,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정하상 바오로 성상을 제작하면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조각을 연습하게 된 것도 모두 김대건 신부 성상을 위한 훈련이었던 것만 같다”고 말했다. 작업을 소개하면서도 그는 “내 힘으로 한 게 아니었다. 모든 과정이 신의 계획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번 작업으로 그는 정교한 사실주의 조각으로 작가로서의 지평을 한층 더 넓히게 됐다. 그동안은 주로 뭉뚝하고 단순하게 다듬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사물이나 사람을 표현했었다. 한국적인 전통미에 대한 탐구도 더욱 깊어졌다. 이번 전시에서 과거 작업과 최근 작업의 표현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한 작가는 “‘앞으로의 작업은 더욱 더 신앙심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에 설치된 3.77m 높이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성상.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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