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값 5배 뻥튀기' 영동군 조경 비위 규명 검찰 몫으로

천경환 2024. 1. 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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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업자 요구 맞춰 재감정 통해 가격 부풀린 이유' 규명이 핵심
박세복 전 군수 "예비 후보자 주저앉히려는 '보이지 않는 손' 작용"
4억원짜리 느티나무가 심겨진 레인보우 힐링관광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주먹구구식 졸속 행정으로 물의를 빚은 충북 영동군 조경사업 비리 의혹에 대한 규명 책임이 결국 검찰로 넘어갔다.

영동군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며 영동읍 매천리 일대에 조성한 레인보우힐링관광지 조경사업에 얽힌 배임·수뢰 등의 비위사실을 규명해 달라는게 감사원의 요청이었지만, 경찰은 의회를 속여 조경수 구입 예산을 확보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위계공무집행방해)만 적용해 박세복 전 군수와 전·현직 공무원 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감평사 2명은 감정평가법 위반 혐의, 조경업자와 브로커는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군이 감정평가를 굳이 다시 하면서 조경물 가격을 부풀린 이유는 무엇인지, 군의회를 속이면서까지 예산을 왜 확보해야 했는지에 대한 퍼즐 맞추기는 검찰 몫으로 넘어가 버린 셈이다.

4일 감사원 등에 따르면 영동군은 힐링관광지 내 광장을 조성하며 2020년 4월 조경사업을 추진했다.

당초 계획은 느티나무 1그루와 소나무 4그루를 심는 것이었는데, 군이 감정평가 법인에 의뢰해 나온 조경수 5그루의 가격은 총 1억1천900만원이다.

그러나 조경업자는 평가액이 낮게 책정됐다며 5그루를 포함한 농장 내 다른 조경물까지 묶어 30억원에 판매하겠다고 제시했다.

군은 다른 법인 2곳에 재감정을 맡기겠다며 20억 원 이상 나올 경우 20억 원에 매매하기로 업자와 구두 합의했다.

감정평가 법인 2곳이 계산한 2차 평가액은 각각 21억원, 22억원.

이 가운데 조경수 5그루 값은 6억650만원으로 기존 1억1천900만원 보다 5배 이상 뛰었지만, "특수목은 일반 나무와 다르게 기준가격이 없다"며 산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똑같은 나무를 갑자기 2차 평가에서 5배 넘는 가격으로 감정했고, 여기에 다른 조경물까지 더해서 20억원짜리 계약을 한 것이다.

2차 감정을 한 감정평가사들은 "군에서 20억원 예산에 맞춰 1차보다 높게 평가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객관적 평가가 아닌 다른 일방의 부탁을 받고 평가를 한 것이어서 이들은 감정평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당시 영동군은 "관광지 내 테마 공원에 해당 특수목이 꼭 필요하다"며 구매 작업을 무리하게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동 시민단체 기자회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욱이 이 일련의 절차는 사업계획이나 예산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

군은 2021년 4월 사업비의 일부인 9억9천만원을 업체에 지급했는데, 이 역시 조경물을 구입하겠다는 얘기도 없이 힐링관광지 내 순환도로 예산을 부풀려 확보한 위법한 예산이었다.

지역사회에서 영동군이 주먹구구식 졸속·위법 행정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감사원의 의뢰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담당 공무원과 조경업자 사이에 금품이 오간 정황이나 업무상 배임죄를 물을 정도의 고의성이 있는지를 찾기 위해 2022년 10월부터 수사를 벌였다.

이 사건의 핵심은 영동군이 왜 감정평가를 다시 하면서까지 조경업자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했는지, 의회를 속여가면서 예산을 확보한 배경은 무엇인지였다.

하지만 1년 3개월의 긴 수사에도 경찰은 이에 대한 명확한 진상을 규명하지 못했다.

앞서 경찰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사업 담당 공무원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며 반려한 바 있다.

조경업자와 구두로 합의한 20억원에 맞춰 가격을 정해 달라는 영동군의 요구가 있었다는 2차 감평사들의 진술이 나왔지만, 군이 이러한 탈법을 강요한 이유도 찾지 못했다.

조경업자가 브로커를 매수해 군의원을 상대로 예산 확보 로비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수사의 매듭이 풀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 역시 무위로 끝났다.

로비 시도 배경을 찾는다면 비싼 값으로 조경물을 구입한 이유를 캘 수 있었겠지만, 조경업자의 관련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최종결재권자인 박세복 전 군수가 과연 몰랐는지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를 넘겨받은 청주지검은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다만 수사 초기라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박 전 군수는 이날 충북도청에서 기자들을 만나 "법과 규정에 따라 잘 처리하라고 사인해 준 죄밖에 없다"면서 "낙후된 영동군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한 실무자들이 이런 사건에 연루된다면 누가 소임을 다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과물도 없이 장기간 끌던 수사를 예비후보 등록 후 동분서주하는 중요한 이때 왜 송치하느냐"며 "예비 후보자를 주저앉히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의 지역구인 충북 동남4군(보은·옥천·영동·괴산)의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k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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