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女 독립운동가 인생에서 ‘지금 우리의 삶’이 보인다

2024. 1. 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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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언덕의 바리’·‘아들에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으로 선정된 연극 ‘언덕의 바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독립유공자 1만7915명 중 고작 660명. 무수히 많았지만, 역사에선 잊혀진 이름들이 있다. 사진 한 장조차 제대로 남지 않아 사라졌던 여성 투쟁가들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임신한 몸으로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 안경신(1988~?)과 첫 하와이 출생 한국인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 운동가인 현미옥이 그 주인공이다.

“왜 이 독립운동가를 지금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인물을 그 시대에 한정하지 않으려 했어요. 독립운동가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영웅의 이미지, 역사 속 단절된 이미지로 박제된 인물이 아닌, 지하철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노인같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안경신의 삶을 담은 연극 ‘언덕의 바리’(6일 개막·대학로예술극장)를 연출한 김정 연출은 지난 3일 오후 예술가의 집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연극은 1920년 8월, ‘거사의 날’로 향한다. 이 날 평안남도 경찰국 청사와 평양시청으로 폭탄이 날아든다. 7개월이 지난 이듬해 3월, 임신 5개월의 안경신이 체포된다. 거사를 도모한 주체는 상해 임시정부. 안경신은 13명씩 3개조로 나눠 국내에 파견된 대원들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거사 이후 체포된 그는 사형을 선고받고 6년을 수감한 뒤 1927년 가석방된다.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다시 그의 이름이 회자된 건 1962년. 그 해에 안경신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연극의 출발은 그가 ‘얼굴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었다. 고연옥 작가가 희곡을 집필할 당시 안경신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1921년 6월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동아일보에 실린 초상화가 전부. 대본 초고가 완성되고 공연 연습이 시작된 2021년 9월, 그의 얼굴이 세상에 공개됐다. 초상화로 ‘존재’를 확인한 이후, 무려 100년 만이었다. 1927년 12월 17일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이 2021년 대학원생의 석사논문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김정 연출은 “(안경신이) 아들을 출산하면서 세상으로부터 사라진 인물이란 점이 흥미로웠다”며 “사라진 안경신의 강렬한 열망이 사회 속에 녹아들어 우리에게로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그들의 업적만이 아니라 한국 역사에 녹아있는 사람의 모습, 동시대 문제적 인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으로 선정된 연극 ‘아들에게(부제:미옥, 앨리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또 다른 독립운동가 현미옥의 삶은 ‘아들에게(부제:미옥, 앨리스 현)’(1월 13~21일, 아르코예술극장)이라는 작품을 통해 무대에 오른다.

현미옥은 주미 전권대사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현순(1880~1968)의 딸로, 하와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한국인이다. 이화여대를 다니다 1920년 아버지가 있던 상하이로 향했고, 그곳에서 좌익 독립운동가인 박헌영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중국, 미국, 러시아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한 현미옥의 파란만장한 삶은 무대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간다.

연출을 맡은 김수희는 “영웅주의 가치관이나 이념을 말하기 보다는 성장해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 실패할 수 밖에 없던 역사적 상황을 보여주려 했다”며 “미국 시민권자로 태어난 여성이 사회주의에 심취해 북한행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조력자와 유대하는 과정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다 보니 두 연출가는 ‘인력 스카우트’ 대란을 마주했다. 김수희 연출과 김정 연출이 같은 의상감독을 섭외하는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의상 감독은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소화할 수는 없어 ‘언덕의 바리’를 선택했다.

두 연극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올해는 연극 ‘언덕의 바리’를 시작으로 총 27개 작품이 선정됐다. 연극 분야에선 사회·역사적 시련 속에서 외면받은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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