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임명한 인물만 3명… 대법관 9인의 선택은?

김태훈 2024. 1. 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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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24년 대선 출마, 대법원에 달려
보수 6 대 진보 3의 '보수 절대 우위' 구도
일각에선 "대법관들, 임명권자 눈치 안 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2024년 미 대선 재도전 가능 여부가 연방대법원의 판단에 달리게 됐다.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9명 중 6명이 공화당 행정부 시절 취임한 보수 성향 인사다. 더욱이 그중 3명은 트럼프가 직접 임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럼프가 대법원 판결 때문에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미 대법관들은 정치적 사건에서 자신의 임명권자가 누구인지에 구애받지 않고 판결한 경우가 많은 만큼 트럼프가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최근 미국 몇몇 주의 사법부가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출마에 제동을 걸고 나선 가운데 결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대선 출마가 가능한지 여부를 최종 판단하게 되었다. 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자신의 대선 출마를 금지한 콜로라도주(州) 대법원 판결에 불복해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앞서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가 ‘대선 사기’ 주장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해 2021년 1월6일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도록 한 것은 반란 가담 행위에 해당한다”며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콜로라도주 경선 투표용지에서 트럼프 이름을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직 공무원의 자격을 제한한 헌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미 수정헌법 14조 3항은 ‘과거 연방의회 의원, 미합중국 관리, 주의회 의원, 또는 주의 행정관이나 사법관으로, 미합중국 헌법을 지지할 것을 선언하고, 후에 이에 대한 폭동이나 반역에 가담하거나 또는 그 적에게 원조를 제공한 자는 누구라도 의회의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 대통령 및 부통령의 선거인, 미합중국이나 각 주 밑에서의 문무의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직후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그(트럼프)는 분명히 반란을 지지했다”며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말로 환영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반역자가 아닐 가능성은 ‘제로’(0)”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사건이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가면서 결국 9인의 대법관이 트럼프의 운명을 손에 쥐게 됐다. 일단 트럼프 측은 승리를 확신하는 모양새다. 공화당 행정부 때 임명된 보수 대법관이 6명으로 민주당 행정부가 발탁한 진보 대법관 3명을 수적으로 압도하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 속한 6명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알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연방대법원 청사 전경.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9명 가운데 현재 보수 대 진보가 6 대 3으로 보수 절대 우위 구도다. 게티이미지 제공
이 가운데 고서치, 캐버노, 배럿 3인의 대법관은 다름아닌 트럼프에 의해 임명된 대법관들이다. 트럼프 캠프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없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 사법사를 되돌아보면 대법관들이 자신을 발탁해준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대신 소신 판결을 내린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1969∼1974년 재임)의 워터게이트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한 대법원 결정이다. 1972년 대선 당시 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 캠프 요원들이 민주당 후보 캠프를 도청한 사실을 닉슨 본인이 알고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다. 닉슨의 개입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특별검사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닉슨이 참모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 확보가 필요하다고 여겨 백악관에 그 제출을 명령했다. 닉슨이 ‘절대 불가’ 입장을 취한 것은 당연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탄핵 위기에 처하자 1974년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AP연합뉴스
사건은 결국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갔다. 그 시절 대법원은 워렌 버거 대법원장을 비롯해 포터 스튜어트, 해리 블랙먼, 루이스 파월,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관까지 5명이 공화당 행정부 시절 취임한 보수 성향 인사였다. 특히 버거, 블랙먼, 파월, 렌퀴스트 4인은 닉슨이 직접 임명해 대법원으로 보낸 인물들이다.

하지만 1974년 대법원은 표결 끝에 대법관 9명 전원일치로 “닉슨의 육성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특검에 증거물로 제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보수냐 진보냐 하는 구분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연방의회 하원이 탄핵소추를 시도하는 가운데 대법원의 이 결정은 닉슨에게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대법원 선고 후 얼마 안 돼 닉슨은 스스로 하야하는 길을 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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