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핀으로 반도체다운 반도체 첫 구현

열과 전기를 전달하는 전도성이 뛰어나 '꿈의 소재'로 불리며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여겨지는 그래핀을 토대로 한 기능성 반도체가 첫 구현됐다.
'그래핀 반도체'는 이론적으로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처리속도가 최대 142배 빠를 것으로 기대됐다. 문제는 반도체 구현에 필요한 전자적 특성인 '밴드갭'을 갖지 못해 그간 개발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에선 지금까지 그래핀에서 관찰됐던 것 중 가장 큰 값의 밴드갭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국내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그래핀 본연의 특성을 열화시킨 상태에서 나온 만큼 실제로 '그래핀 반도체' 개발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월터 드 미국 조지아공대 교수 연구팀은 탄화규소 웨이퍼 상에 여러 층의 그래핀을 올려 기능성 반도체를 개발한 연구 결과를 3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의 결정 구조로 결합해 0.2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nm)로 이뤄진 막으로 된 물질이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물질 중에 가장 얇은 두께를 가졌다. 수 나노미터 단위의 공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도체 소자 소형화의 기존 한계를 돌파할 소재로 꼽힌다. 여기에 전자 이동 속도도 기존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며 전기전도율은 구리의 100배에 달하는 특성까지 지니며 '꿈의 소재'로 주목받았다.
문제는 그래핀에 반도체의 가장 중요한 성질인 밴드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들이 모여 있는 부분과 전자들이 전혀 없는 부분 사이에서 일종의 장벽으로 이뤄진 공간인 밴드갭은 자유전자들이 돌아다니면서 전기가 통하게 한다. 밴드갭이 없으면 항상 전기가 통하는 전도체가 되고 밴드갭이 너무 크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가 된다. 전기가 어떨 때는 통하고 어떨 때는 통하지 않는 반도체가 되기 위해선 적당한 밴드갭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특수하게 제작된 반도체 웨이퍼 가열 장비를 사용해 탄화규소(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 표면에 에피택셜 그래핀을 성장시켰다. 에피택셜 그래핀은 탄화규소 상에서 2~10층의 그래핀을 올린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제작된 그래핀 기반 반도체가 실제로 기능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팀은 실험을 진행했다. 그래핀 위에 전기를 전달하는 원자를 올려 양질의 전도체인지 확인했다. 그 결과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10배 이상 높은 전자 이동도가 확인됐다. 전자에 가해지는 저항이 낮아 반도체 작동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0.6전자볼트(eV)의 밴드갭이 관찰됐다. 이는 지금까지 그래핀에서 관찰된 밴드갭 중 가장 큰 값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그래핀 반도체에 대해 "현재 나노 전자공학에서 사용되는 데 필요한 모든 특성을 갖춘 유일한 2차원 반도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실제 범용 반도체 개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번에 연구에선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 위에 그래핀을 올렸는데 이러한 구조에선 안정성과 성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실리콘 카바이드 위에 그래핀을 올리면 일종의 접착면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구조에 산란이 발생하며 전체 성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밴드갭이 관찰된 시점의 그래핀이 열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굉장히 열화된 상태인 점도 꼬집었다. 이 교수는 "쉽게 말해 그래핀이 '조각조각 찢겨나간 상태'로 정상적인 양질의 상태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는 "지금까지 중 가장 높은 밴드갭 값이 관찰된 것은 과학적으로 매우 흥미롭지만 당장 효용성을 가진 반도체 개발의 단서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이번 연구를 평가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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