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뼈 깎았나" 맹탕 자구안에 태영건설 운명은…워크아웃 아닌 법정관리?

황보준엽 기자 김정현 기자 2024. 1. 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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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 작심발언…"오너 다른 쪽에 자금 소진"
'금융시스템' 바꿔야 지적도…"시행 사업 문턱 높여야"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문제 등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한 (주)태영건설 채권자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다. 2024.1.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황보준엽 김정현 기자 = 태영건설(009410)이 서울방송(SBS) 매각, 사재출연 등이 빠진 맹탕 자구안을 내놨다. 특히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2062억원 중 일부만 태영건설에 지원하는등 약속된 자체 정상화 방안조차 지켜지질 않자 워크아웃이 불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태영건설은 지난 3일 채권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자구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엔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참석해 계열사 매각 등을 포함한 자구책을 전제로 채권단에게 워크아웃을 설득했다.

또 실제 문제가 되는 우발채무는 일부 보도에 나온 9조원이 아닌 2조5000억원 규모며, 현재 수주 잔고는 12조원이 넘는다고 강조했다.

태영건설 측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에는 채권회수 가능성이 낮다고도 호소했다. 만약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되면 모든 채권이 동결되고 현장이 중단되지만, 워크아웃 시에는 금융채권만 동결되는데다, 현장은 정상운영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자체 정상화 방안(자구안)에 '핵심'으로 평가되는 사재출연 규모나 SBS 지분 매각에 대해선 담기질 않았다. 특히 앞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2062억원 중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나 지주사인 TY홀딩스 연대 채무를 갚는 데 쓰고, 400억원만 태영건설에 지원했다.

이에 채권단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워크아웃이 불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1차 금융채권자협의회는 오는 11일 열린다. 이때 채권단 75%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금융 채권은 물론 일반적 상거래 채권까지 모든 채권이 동결되고 현장이 중단돼 수분양자나 협력업체의 피해가 커진다. 추가 자금지원도 없으며, 대규모 정리해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은 "이대로라면 채권단 동의를 얻어내지 못해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사재 출연과 SBS 매각 등 합의안을 이끌어 내야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지금의 자구안에 대해선 부족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신년인사회에서 "태영 측이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신청할 때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라 했는데, 자기 뼈를 깎는 노력이 아니고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대주단이 하고 있고, 지켜보는 당국입장에서도 일부 수긍되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활용과 관련해선 "네가지 자구안 중 태영 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약속 안지키고 그 자금을 오너일가 더 급한 다른 쪽에 자금 소진한거 아니냐 하는 상황인데, 그나마도 회사자금만 쓰고 대주주 개인 명의 자금 따로 파킹한 게 아닌가도 채권단에서 의심을 가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선 이번 사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조달을 받는 데 난항이 있을 수 있어서다. 만약 금융권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PF 대출 상환 기간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책임준공 확약 보증을 선 건설업체는 태영건설의 전철을 따를 수도 있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등으로 인해 전국 곳곳의 건설현장이 한계에 부닥치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국내 PF 대출 잔액은 134조3000억원으로, 3년여 전인 2020년 말(92조5000억원)과 비교해 약 42조원(45%) 뛰었다.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1.19%에서 올해 9월 말 2.42%로 상승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보수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큰데 자금조달이 되질 않으면 결국 위기로 이어진다"며 "특히 상황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위험한 곳들이 많을 것이다. 정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신용평가사들이 건설사들의 신용도를 낮게 평가하고 있어 PF 부실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29일 GS건설(006360), 롯데건설, HDC현대산업개발(294870), 신세계건설(034300) 등 4곳의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 전반으로 부실 우려가 확산할 수 있다며, 금융시스템을 재편하는 등 장기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는 "당연히 금융권에서 건설업계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금융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원래라면 시행사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자금력이 없다보니 문제가 생겼을 땐 건설사도 넘어지고 협력사도 줄도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시행사는 실체가 있는 회사가 아니다"라며 "은행에선 이들에게 돈을 내줄 수 없으니 건설사에 보증을 서게 하는데 이게 향후 문제를 일으킨다. 외국처럼 자본력이 있는 시행사가 개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서둘러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진형 회장은 "결국은 분양을 해서 돈을 갚아야 한다"며 "금융기관과 건설사도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완화를 통해 거래가 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wns83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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