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은 별개”...민진당 유세, 中본토인은 모르는 방언 썼다

신베이/이벌찬 특파원 2024. 1. 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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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0 대만 反中 집권당 첫 대규모 유세 현장 르포
3일 저녁 대만 신베이시에서 열린 집권 민진당의 선거 유세 집회./신베이=이벌찬 특파원

‘옳은 사람을 선택하고, 옳은 길을 걷자(選對的人, 走對的路)’

대만 총통 선거를 열흘 앞둔 3일 오후 7시. 타이베이 중심지에서 13km 떨어진 신베이시 투청구(區) 공터에는 이런 슬로건이 새겨진 깃발을 든 1만 5000여명이 집결했다. 반중(反中) 성향 민진당이 황금주(黃金周·선거 직전 열흘)를 맞아 개최한 첫 대규모 유세에 대만 전역 지지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이날 유세에는 라이칭더(賴清德)·샤오메이친(蕭美琴) 총통·부총통 후보, 차이잉원 현 총통, 민진당 입법위원(국회의원 격) 후보들이 총출동했다. 유세가 열린 신베이시는 민진당의 경쟁 상대인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가 현 시장을 맡고 있는 곳으로, 민진당 입장에선 적진 한가운데서 막판 공세를 개시한 셈이다.

이날 민진당 지지자들은 오후 내내 내린 비를 뚫고 한자리에 모였다. 유세 현장의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는 빗물이 고여 웅덩이가 생겼고 1만여 개의 플라스틱 의자는 물에 흠뻑 젖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고 순서대로 의자를 차지해 앉았다. 50대 이상 장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청년들과 어린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도 간간이 보였다. 민진당 지지자 황모(52)씨는 “대만이 다시 중국에 발목 잡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민진당의 샤자(下架·진열대에서 내리는 일)를 막기 위해 친구들까지 데리고 왔다”고 했다. 오는 13일 대만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총통·부총통, 지역구 입법위원, 정당별 투표(비례 의원을 뽑기 위한 투표)에서 각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이 선거에서 반중 민진당과 친중(親中) 성향인 제1 야당 국민당 중에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대만해협의 운명이 바뀔 전망이다.

3일 민진당의 황금주 첫 대규모 선거 유세에서 한 지지자가 '라이칭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전랑에 맞서는 개와 고양이

오후 7시 15분쯤 민진당 상징색인 녹색으로 꾸며진 무대 위에 첫 순서로 입법위원 후보들이 오르자 지지자들 사이에서 록밴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팀타이완(TEAM TAIWAN), 팅(挺·지지하다)타이완’ ‘2024, 단결일치(團結一致)’ ‘까유(加油) 타이완’ 등 구호가 이어졌다. 전광판에는 ‘미덕이 대만에서 승리한다(美德贏台灣)’는 문구가 반복해서 떴다. 옆자리에 앉은 지지자에게 물어보니 “샤오메이친의 ‘메이(美·미)’, 라이칭더의 ‘더(德·덕)’를 따서 두 사람을 ‘미덕’이라 부른다”면서 “저 문구를 소리내서 읽어보면 ‘메이드 인 타이완(MADE IN TAIWAN)’처럼 들리지 않느냐. 민진당만이 진짜 대만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3일 오후 타이베이에서 민진당 지지자가 라이칭더와 샤오메이친의 캐릭터 이미지를 들고 있다./타이베이=이벌찬 특파원

무대 위에 걸린 라이와 샤오의 대형 사진 아래에는 이들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검은색 개(라이)와 흰색 고양이(샤오) 그림도 새겨져 있었다. 실제로 라이칭더는 ‘루크’란 이름의 개를, 샤오는 4마리 고양이를 기르지만, 진짜 의미는 중국의 공격적인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에 맞서 고양이와 개처럼 유연하게 생존의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3일 민진당의 신베이 대규모 유세 현장에서 한 지지자가 웃음짓고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민진당의 록스타 차이잉원

유세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치인들은 대만과 중국 분리를 강도 높게 주장했다. 행사 사회를 맡은 민진당 입법위원 후보 우정(吳崢)은 “우리는 중국 의존을 거부했고, 샤오잉(小英·차이잉원의 애칭) 총통 덕분에 대만은 크게 앞으로 나아갔다”면서 “허우유이(국민당)·커원저(민중당) 후보는 자꾸 과거의 길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우리는 세계와 연결되고 고립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4년 3월 ‘양안 서비스 무역 협정’의 체결에 반대해 입법원(국회 격)을 점거하는 ‘해바라기 학생 운동(太陽花學運)’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록 콘서트를 방불케 했던 3일 저녁 대만 민진당의 신베이 유세 현장./신베이=이벌찬 특파원

행사 개최 한 시간 만인 오후 8시에 등장한 차이잉원 현 총통 또한 반중 성격의 ‘차이잉원 노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이잉원이 “종통하오!(총통님 안녕하세요!)”를 연신 외치는 지지자들을 향해서 “민진당이 대만을 계속해서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외치자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차이잉원은 연설에서 “(임기 동안) 대만의 자유·민주를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면서 “대만이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결심을 보여준 덕분에 세계 민주 국가들이 우리 편에 서서 함께 수호하게 됐다”고 했다. 또 “이제 중국을 통해 해외로 수출할 필요 없이 대만에서 직접 수출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면서 “‘세계의 대만’이란 성과를 남긴 것이고, 차이잉원 노선은 옳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5분 동안 이어진 연설 말미에는 “올해 전 세계 인구 절반이 투표장에 가는데, 세계가 대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다른 지원군으로 등장한 쑤전창 전(前)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도 대만의 정부 재정, 증시, 국가경쟁력, 아동과 노인 복지의 개선 등을 차이잉원 정부의 주요 업적으로 거론하면서 “야권은 ‘세계의 대만’을 ‘중국의 대만’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3일 저녁 신베이에서 열린 대만 집권 민진당의 첫 황금주 대규모 유세에서 라이칭더 총통 후보와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대만연합보 캡처

◇라이칭더, ‘대만 분리’ ‘국회 과반’ 강조

유세 시작 2시간 뒤인 오후 9시에 등장한 주인공 라이칭더는 중국과 보조를 맞추던 대만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평화의 대만을 건설하기 위한 첫 단추는 주권 수호와 과거의 길(回頭路)로 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92공식(‘하나의 중국’은 인정하되 양측이 각자 다른 명칭을 쓰기로 한 합의)’에 대해서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면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계속해서 92공식을 ‘일국양제(한 나라 두 제도)’로 대만을 치리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하기에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주권 포기”라고 했다. 차이잉원의 92공식 수용불가 입장을 계승하며 ‘대만 독립’ 의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다만 그는 “대만이 실력이 생긴 후에는 문(門)을 열 수도 있다”면서 “대등하고 존엄을 지킬 수 있다면 중국과 교류·협력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샤오메이친도 연설에서 “전 세계가 대만 수호를 동의하고, 우리는 그럴만한 존재가 됐다”면서 “경제 기적을 만들었고, 세계 번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고 했다.

3일 저녁 대만 민진당 유세 현장에서 라이칭더 대만 총통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라이와 샤오는 연설에서 국회 과반 확보 또한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이 총통을 배출하더라도 의회는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샤오는 “국회에서 과반을 넘기지 못하면 일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고 했다. 실제로 과거 첫 정권 교체를 이뤄낸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 총통(2000~2008년 재임)이 국회를 장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날 현장의 지지자들 대부분은 머리에 쓴 두건이나 머리띠에 라이 후보의 이름 대신 ‘국회도 절반 넘어야’라는 문구를 새겼다. 최다 입법위원 확보를 의미하는 구호인 ‘왕이촨 후보를 구하라(搶救王義川)’도 현장 곳곳에서 보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패러디한 문구다. 유세 후반부에서는 ‘총통은 당선되고, 국회는 과반 넘기자(總統要當選國會要過半)’라는 구호가 주로 나왔다.

◇본토 중국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유세

이날 유세의 특징은 ‘궈위(國語)’라고 불리는 표준어 대신 대만 방언인 ‘타이위(臺語·민난어)’가 쓰인 것이었다. 행사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은 방언으로 발언했다. 첫 타자로 등장한 좡밍위안 입법위원 후보는 혼자서 10분 넘게 방언으로 연설했을 정도다. 본토 중국인이 자리에 앉아 있었더라면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을 터였다. 대만인은 크게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과 원래 대만 땅에서 살던 본성인(本省人·산지인으로 불리는 소수민족들과 평지인 포함)으로 나뉘는데, 중국과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는 민진당은 ‘대만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식 석상에서 방언을 자주 쓴다.

3일 저녁 대만 신베이에서 열린 대규모 민진당 유세 현장의 전광판에 '둥쏸' 두 글자가 띄워져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유세에서는 후보들이 등장할 때마다 ‘둥쏸(凍蒜)!”이란 함성도 터져 나왔다. ‘얼린 마늘’을 뜻하는 ‘둥쏸’은 타이위에서 ‘당선(當選)’과 발음이 같다.

◇여론조사에선 라이칭더가 약간 우세

대만 선거에서 라이칭더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계속해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민진당과 국민당이 번갈아 정권을 교체했던 8년 주기가 깨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2일 대만 ETtoday가 발표한 선거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에 따르면 라이 후보 지지율(구간으로 발표)은 35.9~41.9%로, 허 후보의 32.8~38.8%를 앞섰다. 커 후보는 19.4~25.4%로 뒤처졌다. TVBS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라이 후보(33%)가 허우 후보(30%)를 3%포인트 앞섰고, 메이리다오전자보의 여론조사(지난달 27~29일)에서는 라이 후보 지지율이 39.6%로, 허우 후보(28.5%)에 11.1%포인트나 앞섰다.

3일 저녁 9시 30분 민진당 유세가 끝난 뒤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서 의자를 정리하고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그러나 대만의 한 정당 본부 관계자는 “대만에서는 여론조사가 발표되지 않는 마지막 열흘 동안 판세가 크게 요동치기 때문에 누가 이길지는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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