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연속 흑자' 남양유업이 어쩌다…승승장구 제동 건 '오너 리스크'

유엄식 기자 2024. 1. 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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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오너 경영 막 내린 남양유업은 어떤 기업
남양유업이 1967년 국내 최초로 생산한 조제분유. /사진=남양유업 블로그

남양유업은 창업주인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 1964년 설립했다. 1965년 천안공장을 세웠고, 1967년 국내 최초로 조제분유를 생산했다. 홍두영 회장은 경제 사정이 어렵고 모유를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 실조에 걸린 아기를 위해 분유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당시 연간 100만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났고 모유 수유자가 줄어드는 추세여서 남양유업 분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71년엔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를 주최했는데 전국에 방송 중계가 되고 대통령 영부인까지 참석할 정도로 큰 행사였다.

1977년 유산균발효유 남양요구르트를 생산했고, 1978년 기업공개(IPO)로 주식을 상장했다. 1980년 공주공장을 지어 우유 생산을 시작했고, 1988년 경주공장을 신설했다. 1989년부터 치즈를 만들었다.

1990년대는 불가리스(1991년) 분유 임페리얼(1993년) 요구르트 이오(1996년) 등 현재 회사의 대표 스테디셀러가 된 제품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2000년대는 2002년 천안 신공장 준공 이후 커피믹스 프렌치카페, 17차, 드빈치 치즈, 떠먹는 불가리스 등 후속 인기 제품을 출시하며 제품 다각화에 주력했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여러 식품 대기업들이 경영난을 겪었지만 창업주의 '무차입 안전 경영' 기조 덕분에 남양유업은 불경기 파고를 안정적으로 극복했다. 창업주는 장남 홍원식 회장에게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라", "정치와 거리두고 사옥도 짓지 말라"는 회사 운영 방침을 강조했다. 남양유업이 창사 53년 만인 2017년 현재 강남 논현동 본사(1964빌딩)에 뒤늦게 입주한 이유다.

2010년 작고한 남양유업 창업주 고 홍두영 명예회장. /사진제공=남양유업

남양유업은 2009년 유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0년 창업주 별세 후 3년 만에 위기를 겪는다. 2013년 남양유업 본사 소속 영업사원이 지역 대리점 직원에게 폭언을 한 음성파일이 언론에 공개되며 '갑질 사건' 파문에 휩싸였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비인기 상품을 강매하는 '밀어내기' 관행이 세간이 알려진 계기였다. 녹취록 공개 후 일주일 만에 경영진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오너였던 홍원식 회장은 현장에 불참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대리점주들은 남양유업을 고소했고, 소비자 불매 운동까지 이어졌다.

2012년까지 44년 연속 흑자였던 남양유업은 갑질 사건 여파로 2013년 175억원, 2014년 260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난이 심화됐다.

2013년 5월 남양유업 갑질 사건 관련 경영진들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 /사진제공=뉴스1

2019년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사건도 기업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켰다. 홍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황씨가 남양유업 경영과 전혀 관계 없는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앞서 갑질 사건 여파로 손상된 이미지와 경쟁사를 비방한 댓글 사건 등으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이어서 소비자 반응은 냉담했다.

2021년 5월 촉발한 불가리스 허위 광고 논란은 남양유업이 60년 만에 오너 경영의 막을 내린 결정적 계기였다. 코로나19 펜데믹이 한창이었던 당시 남양유업 관계자들은 한 발표회에서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내용은 곧 허위로 드러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남양유업을 고발했고, 경찰은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홍원식 회장은 이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며 대국민 사과 기자 회견을 했고, 이어 5월 27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이하 한앤코)에 본인과 가족이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08%(38만2146주)를 3107억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2021년 5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그런데 이 계약을 승인하기 위해 7월 말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지 않았다. 매각 관련 세부 조건(홍 회장의 고문 선임, 백미당 경영권 보장)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한앤코는 이런 조건이 실존하지 않는다며 8월 27일 주식매매계약 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홍 회장은 9월 1일 매각 결렬을 통보하며 이날 대법 선고까지 2년 3개월간 하급심을 포함해 총 7차례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법원은 모두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 판결로 주식매매계약 효력이 공식 인정되면서 한앤코가 남양유업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 창업주부터 60년 간 이어온 남양유업의 오너 경영도 막을 내리게 됐다.

한앤코는 대법 선고 직후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조속히 주식매매계약이 이행돼 남양유업 임직원들과 함께 경영개선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며,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남양유업을 만들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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