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움 안고'…새해 첫날 서울역 노숙인의 죽음

유영규 기자 2024. 1. 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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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인 고(故) 왕 모(60) 씨가 머물던 '목가구 거처' 앞 빈소 (사진=연합뉴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늘 안고 계신 분이었어요. 갑작스러운 이별이지만 형님께서 좋은 곳에 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던 지난 3일 오후 2시쯤 서울역 서부교차로 인근 노숙인 텐트촌.

별명을 '대로'라고 소개한 노숙인 A 씨가 마이크를 잡고 추도사를 읽었습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세상을 떠난 노숙인 고(故) 왕 모(60) 씨의 추모제가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의 주최로 열린 것입니다.

서울역 인근 곳곳에 붙은 부고 알림을 본 동료 노숙인 20여 명이 모여 왕 씨와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제사상에는 인스턴트 짜장밥과 순대, 곶감, 귤 등이 올려졌습니다.

숨진 왕 씨는 지난 1일 오전 7시 30분쯤 노숙인 지원시설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직원이 임시 거처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경찰과 지원센터는 고혈압 등을 앓고 있던 왕 씨가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센터 관계자는 "사망 당일 새벽 2시 30분까지도 직원이 텐트촌을 찾아 왕 씨의 안부를 확인했다"며 "병원에 가기 싫다는 왕 씨를 설득해 인근 병원에서 진료받기로 한 전날에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타이완 국적인 왕 씨는 30여 년 전 가족과 떨어져 일자리를 구하러 한국에 왔습니다.

왕 씨는 서울 중구 북창동의 중화요리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했으나 손목 부상으로 실직했습니다.

이후 그가 어떻게 노숙까지 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왕 씨와 3년간 함께 노숙했다는 A 씨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왕 씨가 워낙 과묵한지라 알지 못한다"며 "물어봤자 여기 다른 노숙인들마냥 구차해질 게 뻔하니 따로 캐묻지도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지원센터의 상담 기록 등을 살펴보면 왕 씨는 최소 2012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왕 씨는 이곳 인근의 지하차도와 역사 안을 떠돌다가 2022년 텐트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센터는 과음하던 왕 씨를 '집중관리 대상'에 포함해 하루에 다섯 번 면담하기도 했습니다.

센터 측은 2012년 이후 전산망에 기록된 왕씨의 상담 횟수만 600여 건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왕 씨의 임시 거처는 여느 노숙인의 텐트와는 달랐습니다.

지난해 12월 칼바람에 텐트가 찢어지자 노숙인의 텐트 수리를 돕는 천근성(39) 작가가 버려진 목가구를 손 봐 특별히 만들어줬습니다.

천 작가는 타이완에서 '희(囍)'자가 쓰인 빨간 춘련(春聯)을 사와 왕 씨의 거처에 붙여주는가 하면 타이완노숙인지원협회와의 접촉도 주선했습니다.

춘련은 소망을 적어 대문이나 벽에 붙이는 종이입니다.

천 작가는 "한국에 찾아온 협회 관계자와 30여 년 만에 모국어로 이야기하니 그제야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듯했다"며 "새해에는 꼭 타이완에 가서 자녀들에게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추도사를 한 A씨는 "왕 씨가 매일 성인이 된 딸 사진을 보여주면서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종교에 귀의해서 이제는 술도 끊고 좋은 일만 생각하자고 다짐하던 분이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노숙인 임 모 씨도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술 한 잔을 먹더라도 소주병을 어떻게든 현금으로 바꿔오던 친구였다"고 왕 씨를 떠올렸습니다.

경찰은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를 통해 부음을 전했지만 유족은 시신 인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서울시는 왕 씨를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하고 공영장례를 치를 방침입니다.

왕 씨의 유품은 옷가지와 이불 몇 개, 남은 음식이 전부였습니다.

왕 씨가 머물던 '목가구 거처'는 텐트촌에 새롭게 들어오는 또 다른 노숙인의 거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천 작가는 전했습니다.

추모제를 마치고 귀가한 천 작가는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렸습니다.

"뭐가 그리 바빠 동이 트기도 전에 분주하게 가셨는지 모르겠지만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 오신 모든 이웃 마음에 따뜻한 집을 짓고 살아가세요. 저도 종종 그리운 안부를 묻겠습니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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