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일본이 폭발적 관광객 증가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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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광객이 늘기 시작한 건 최근뿐만이 아닙니다. 원래는 2013년 아베노믹스 때부터 계속 늘었거든요. 최대로 많이 늘었을 때가 2018~2019년인데 3천만 명까지 다다랐어요. 이후에는 코로나 때문에 2021년 25만 명, 최하로 떨어졌다가 2023년 들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복을 한 거죠. 작년 10월 기준으로 관광객이 2천만 명 왔는데요, 그중 4분의 1이 한국인이었어요. 2019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엔저가 되면서 관광객도 많이 늘었지만 또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외국인 투자가 많이 늘었어요. 그래서 기업에 관련된 실적도 많이 개선됐는데, 문제는 엔저가 되면 수입 물가가 많이 올라요. 그렇게 되면 기름값도 오르고 밀가루 가격도 오르기 때문에 서민들의 생활 수준이 하락합니다. 물론 임금이 오르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현재 임금이 오르는 속도보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일본의 빅맥 같은 경우도 30년 동안 한 번도 가격이 오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재작년에 410엔 되고 작년에 450엔 됐습니다. 일본의 젊은 친구들은 400엔대 빅맥을 처음 본 거예요. 너무 충격이었던 거죠. 이런 식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사실 엔저가 되면서 서민들은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호황일까 아닐까
일본이 호황이냐 아니냐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봐야 되는 게 경기 순환이거든요. 확장기가 됐다가 다시 수축기가 되는 일종의 비즈니스 사이클이 있잖아요. 일본이 지금 제17 순환의 확장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기가 확장되고 있는 상황은 맞아요. 또 고려해야 할 게, 코로나 때 전 세계 경기가 침체됐었죠. 2020년이 제일 바닥이었고 이후에 2021년, 2022년이 되면서 대부분 회복을 했어요. 그런데 일본은 회복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한 1~2년 늦었습니다. 2023년 와서야 겨우 2019년 수준이 됐거든요. 사실 일본은 뒤늦게 회복을 한 건데 우리가 보기에는 시차가 있는 거죠.
하지만 이런 걸 감안하더라도 30년 만에 관찰되는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 기업의 국내 투자가 30년 만에 늘고 있고 또 임금 상승이 30년 만에 아주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어요. 그럼 왜 일본은 그동안 국내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임금도 오르지 않았을까요? 플라자합의* 때 일본의 기업들은 엔고를 피해서 해외로 진출을 했습니다.
*플라자 합의: 미국의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맺은 합의
수출이 불리하니까 직접 해외에 가서 생산 거점을 만들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했는데, 나중에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져 국내 자본 수익률이 낮아지고 내수가 축소되니까 기업들은 계속해서 밖으로 밖으로 나갔거든요. 그런데 그 와중에 아베노믹스가 실시되면서 이제 엔저가 된 거죠.
*아베노믹스: 2012년부터 시행한 경제정책으로, 과감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경제성장 전략을 주 내용으로 함
엔저가 되면 기업들이 너무 좋은 게 아무것도 안 해도 영업이익이 개선돼요. 왜냐하면 미국에서 1달러짜리 물건을 만들어서 판다고 했을 때 그 1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엔화 가치가 떨어지니까 앉은자리에서 환차익을 얻는 거죠. 1달러에 110엔일 때와 150엔일 때를 비교해 보면 엔(¥)으로 환산했을 때 이익이 훨씬 늘어나죠. 그래서 이 환차익 때문에 기업의 영업이익이 개선되면서 실적이 좋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기업 상황이 좋아져도 국내에 투자를 하는 등의 뭔가를 하지 않습니다. 해외에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해외 생산시설에서 재투자하거나 이랬거든요. 왜냐하면 국내는 이미 자본 수익률이 낮아서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해도 별로 수지가 안 맞아요. 게다가 투자를 안 하다 보니까 일본의 노동 생산성도 낮고, 그럼 임금도 올라가지 않겠죠.
기업들은 엔저로 환차익을 얻어서 영업이익이 개선되는데 국내는 투자도 하지 않고 임금도 오르지 않으면 사람들은 소비도 안 할 거고요. 기업은 호황인데 가계는 불황인 상태가 되고, 이걸 미지근한 호황이라고 해서 ‘저온 호황’이라고 이야기해요. 반쪽짜리 호황이 이어지는 거죠. 최근 들어 분위기가 약간 반전이 됐습니다. 기업이 국내 투자를 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의 국내 설비 투자를 보시면 90년, 91년에 100조 엔 정도 하다 그 이후에는 100조 엔을 넘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에 보시면 2023년에 아마 100조 엔 넘을 거라고 추계를 하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경제·안보 이슈에서 일본이 반사이익을 조금 얻었기 때문이에요. 반도체 같은 경제·안보 관련 중요 물자들을 국내에서 생산하려고 하면서 외국에 나갔던 기업들이 이제 국내에 들어오고, 또 그런 기업들에게는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많이 주고 있거든요.
“제발 돌아와!” ‘리쇼어링’에 승부 걸었다
일본은 10나노 이하에서 리쇼어링을 하고 싶은 겁니다. 리쇼어링은 해외에 나와 있던 일본 기업들이 국내로 복귀하는 건데, 반도체로 예시를 들면 우리가 몇 나노 몇 나노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20나노, 30나노, 40나노 같은 레거시 반도체는 중국이 잘하고 이미 중국에서 하고 있으니까 그건 그냥 놔두는 거예요. 그런데 10나노 이하가 최첨단 반도체죠. 10나노 이하는 절대 중국을 끼우지 않겠다는 겁니다. 중국을 제외하고 동맹국들하고만 하겠다는 게 디리스킹이거든요.
미국이 디커플링이라는 중국 경제 정책을 디리스킹으로 바꾼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디커플링은 완전히 중국을 배제하는 거잖아요. 디리스킹은 완전히 배제하는 게 아니고 최첨단 분야에서만 중국을 제외하는 거거든요. 그럼 왜 이렇게 바꿨냐, 일단 미국을 제외한 다른 외국의 반발이 너무 컸어요. 다른 나라들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무조건 배제하라 그러면 어떡하냐는 반발이 있었고, 또 하나는 미국 회사들의 반발도 컸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 많거든요. 갑자기 정부가 중국하고 사업하지 말라고 하면 굉장히 곤란하겠죠. 그래서 디리스킹으로 바꿨는데, 결국 경제·안보상의 아무리 중요한 이슈라도 기업의 모티베이션이나 인센티브를 무시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그 개념으로 일본을 보면 되죠. 일본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기업의 모티베이션이나 인센티브랑 합치하는가,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 기업들이 계속 밖으로 나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건 일본이 내수도 축소되고 자본 수익률이 낮아서 일본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해외에서 투자하는 게 훨씬 돈이 되기 때문에 나갔던 거거든요. 근데 이 상황은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바뀐 게 없는데 정부가 경제·안보상 중요하니까 들어오라고 한다 해도 그러지 않겠죠. 모든 기업이 국내로 회귀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최첨단 분야 있죠. 그런 반도체, 배터리, AI 양자 컴퓨팅 같은 것들은 경제·안보상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보조금을 주면서 기업들에게 장려를 하고 있어요.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최첨단 분야 기업들은 이제 리쇼어링과 프렌드 쇼어링을 하죠.
예를 들어 대만의 TSMC가 지금 일본에 쿠마모토 공장 짓고 있잖아요. 한 3분의 1을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거든요. 그다음에 미국의 마이크론도 일본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고, 역시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죠. 이런 식으로 최첨단 분야는 아마 프렌드 쇼어링, 리쇼어링 하면서 구축이 될 겁니다.
일본은 왜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 유지할까
일본이 제로금리를 1999년부터 실시했고요. 사실 저금리는 그거보다 더 빨리 실시했어요. 버블이 붕괴됐던 91년, 92년부터 금리를 계속 떨어뜨려서 저금리는 그때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아예 제로 금리로 간 게 1999년이고, 거기서 마이너스 금리로 간 게 2016년부터죠. 그러니까 한 30년 이상 계속 낮은 금리를 유지했습니다.
일본이 7년 동안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인데요, 어떤 트라우마냐면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양적 완화를 했었어요. 양적 완화는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가 1998년 논문에서 처음 제시를 한 개념인데 그걸 일본이 제일 먼저 실험적으로 실시했거든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2001년 고이즈미 총리 때 실시했습니다.
왜 했냐면 일본이 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보냈잖아요.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실험적으로 양적 완화라는 걸 해보자고 한 겁니다. 그래서 나름 성공을 했어요. 그게 이자나미 경기 73개월 동안의 호황이거든요. 그래서 2006년이 되면서 ‘이제 호황이 됐으니까 그만해도 되겠다’ 이렇게 판단을 하고 양적 완화를 멈추고 금리를 살짝 올렸어요. 그런데 금리를 올리자마자 그다음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칩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한테 비난을 받습니다. 양적 완화를 할 거면 좀 더 길고 담대하게 해야지 하면서요.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유럽이나 미국은 양적 완화를 실시했는데 일본 은행은 그때는 또 주저하면서 못해요. 그러면서 정책 대응도 늦고 할 때도 제대로 못 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일본 은행의 정책 입안자들, 담당자들이 트라우마를 입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충분한 신호가 보일 때까지 양적 완화를 섣불리 그만둬서는 안 되겠다는 컨센서스가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 밖으로 알려진 바로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 2%가 꾸준히 나타나면 금리를 정상화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거 말고 보는 게 세 가지 더 있습니다. GDP디플레이터, 단위당 노동 비용, GDP 갭이라는 걸 봐요. 이 세 가지가 다 플러스(+)로 전환이 되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고 일본이 장기 침체에서 벗어났구나 하고 판단하는 건데 문제는 이 GDP 갭입니다. 계속 마이너스였어요.
그러다가 작년 2분기, 그러니까 4월, 5월, 6월에 이 GDP 갭이 플러스(+)로 전환이 됐거든요. 그럼 3개 다 된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금리 정상화를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분기 실적은 다시 GDP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아슬아슬한 거예요. 마음 놓고 금리 정상화를 하자고 얘기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상황인 거죠.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기자가 ‘일본이 대체 언제 금리 정상화를 할 거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우에다 총재가 뭐라고 대답했냐면 “금리 정상화를 늦게 해서 생기는 부작용보다 섣불리 빨리 해서 생기는 부작용이 훨씬 두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늦게 해서 최후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금리 정상화를 했을 때의 부작용이 뭐냐면 고물가예요. 고물가의 고통을 국민들이 다 견뎌야 되는 거죠. 섣불리 빨리 해서 생기는 부작용은 잃어버린 30년의 확정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막 회복해서 조금 올라왔는데 금리를 올려서 다시 수렁에 빠지면 기껏 7년 동안 노력해 온 게 다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 은행은 물가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불황에서 완벽하게 탈출할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자고 계속 설득하고 있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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