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정치 악순환과 정치 시스템 개혁[포럼]

2024. 1. 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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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벽두부터 절대로 벌어져선 안 될 정치 테러가 발생했다.

'혐오의 정치' 칼날에 야당 대표가 쓰러진 것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피습 사건으로 향후 정치 일정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언제 정상적인 정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가 향후 정치 시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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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前 한국선거학회 회장

신년 벽두부터 절대로 벌어져선 안 될 정치 테러가 발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방문 일정 직후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왼쪽 목 부위를 습격당했다. 당국은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공모가 있었는지 등을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혐오의 정치’ 칼날에 야당 대표가 쓰러진 것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지난 2006년 5월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 지원 유세 중 커터 칼로 습격당했고, 2022년 3월에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서울서 대선 지원 유세 중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한국 정치에 왜 이런 비극적 상황이 반복되는 것인가? 양극단으로 쪼개진 진영 간의 대립 속에서 확증편향에 빠진 팬덤과 열성 지지층이 상대를 향한 혐오·적대·음해·왜곡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회색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 정치는 검은색과 흰색뿐이다. 갈등을 완충할 공간 자체가 없다. 상대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악마화하며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양극화 정치가 이런 비극적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피습 사건으로 향후 정치 일정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당의 ‘재편 시계’가 멈춰 서게 됐다. 이낙연 전 대표가 준비하는 신당 창당 일정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비주류 혁신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도 탈당 등 결단을 알리는 기자회견 일정을 보류했다. 이 대표와 관련된 재판 일정도 차질이 생기게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8일로 예정돼 있던 ‘검사 사칭 위증교사’ 사건의 재판이 22일로 연기됐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언제 정상적인 정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가 향후 정치 시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표 수술을 집행한 서울대병원 측이 4일 오전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불필요한 억측과 음모를 해소하기 위해서 직접 이 대표에 대한 치료 경과와 현재의 상태에 대해 상세하게 브리핑한 것은 적절한 조치다.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저서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에서 정치 양극화가 증오와 분노의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정치 양극화가, 자기만 옳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 문법이 당연해지는 ‘이상한 정치의 시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양극화를 더 자극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대중은 양극화에 더욱 순응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따라서, 클라인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정치 양극화를, 특정한 문제적 인물이 없으면 곧 해결될 일시적 현상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치 양극화로 정치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 쌓여 가는데, 실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정치 테러’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선 테러범을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히 처벌하고, 증오와 선동의 정치를 조장하는 정치권이 자성해야 한다. 더불어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타협·합의·협조’의 새로운 정치가 용솟음쳐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는 것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前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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