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을 생각 접었습니다"…악몽이 된 신혼희망타운
기약 없는 일정 지연에 분양가 상승까지 불만 쇄도
"일정 밀리다 자녀 고등학생 돼야 입주할 판"
"오른 분양가 마련하느라 출산 포기"
신혼희망타운 본청약 일정이 밀리면서 사전청약 당첨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신혼희망타운은 출산과 육아 수요에 집중한 신혼부부 전용 공공주택이지만, 본청약과 입주가 지연되는 탓에 출산과 육아 모두 차질을 빚게 만드는 원인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본청약이 밀리면서 분양가도 오르고 있다보니 당첨자들 불안한 상황이다.
2021년 성남낙생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에 당첨된 이모씨(30)는 주거 계획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혼희망타운 본청약 일정이 기약없이 밀리면서 주거 계획에 차질이 발생한 탓이다. 성남낙생 신혼희망타운은 지난해 11월 본청약과 2027년 3월 입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본청약 일정을 2025년 하반기 이후로 연기했다.
이씨는 현재 6년까지 거주할 수 있는 행복주택에 살고 있다. 당초 행복주택에서 거주하다가 신혼희망타운으로 이주할 예정이었지만, 본청약과 입주가 지연됨에 따라 주거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씨는 "행복주택에서 최대한 지낼 생각이지만, 이후 공백 기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며 "신혼희망타운 계약금과 중도금을 마련하면서 추가적인 주거 부담까지 떠안으려니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일정 지연에 주거 공백…성장하는 아이도 걱정
같은 신혼희망타운의 전용면적 55㎡에 당첨된 김모씨(37)도 고민이 깊다. 현재 11살과 7살인 자녀들이 입주 시점에는 더욱 성장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2027년 입주한다면 그래도 아이들이 어리기에 충분히 지낼 것이라 생각했다"며 "지금 와서는 본청약이 2026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본청약 4년 뒤 입주한다면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입주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성년이나 다름없는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살기에 방 2개, 알파룸 1개짜리 신혼희망타운은 너무 비좁다"고 강조했다.
본청약이 지연되면서 분양가가 급등한다는 점도 사전청약자들에겐 부담 요소다. LH에서 사전청약을 했던 신혼희망타운 분양가는 본청약에서 크게 오르는 추세다. 2021년 사전청약을 진행한 성남복정 A1 신혼희망타운의 경우 전용 59㎡ 추정분양가는 6억7000만원이지만, 다음 해 본청약에서는 7억3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사실상 주변 시세와 같은 가격으로 책정된 셈이다. 서울대방 신혼희망타운 전용 55㎡도 사전청약 추정분양가는 7억2000만원이었지만, 본청약 분양가는 7억7000만원으로 올랐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했던 사전예약 제도는 본청약이 지연되더라도 사전예약 당첨자들의 예약 분양가를 유지해 당첨자들이 자금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전청약은 분양가 상승의 상한선이 없기에 본청약이 지연될수록 분양가가 오르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신혼희망타운은 자산과 소득을 제한해 공급했다는 점도 문제다. 본청약 지연과 분양가 급등으로 인한 자금 계획 차질을 감당할 수 있는 당첨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성남낙생 신혼희망타운에 당첨된 임모씨(36)는 자녀 계획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분양가 급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자녀를 출산할 여유는 없다는 이유다. 임씨는 "분양가가 확정되면 자금계획을 세운 뒤 자녀를 가질 계획이었다"며 "분양가가 얼마나 오를지 모르는 상황이 됐는데, 어떻게 애 낳을 생각을 하겠냐"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기약없는 본청약 지연…분양가 어디까지 오르나
다른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1년 과천주암 C1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에 당첨된 이모씨(40)는 최근 아이가 다니던 학원을 끊었다. 분양가 상승이 우려되고 당장 수입을 늘리기 어려운 만큼 모든 지출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과천주암 신혼희망타운은 오는 10월 본청약과 2027년 입주가 예정되어 있지만, 입주 예상 시기가 2031년으로 변경되는 등 일정 지연 가능성이 대두된 단지다. 일정이 지연되면 분양가도 덩달아 상승할 전망이다.
이씨는 "불안감이 커져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매달 38만원씩 나가던 아이 학원비마저 인터넷 강의로 바꾸고 절반으로 줄였다"며 "주택 이름은 신혼희망타운인데, 정작 현실은 신혼과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같은 신혼희망타운 당첨자 전모씨(43)도 아파트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빌라 전세로 옮겨갈 예정이다. 전씨는 "지출을 줄이던 끝에 아이에게 아파트에서 계속 살지 아니면 학원을 그만 다닐지 물었다"며 "아이가 학원을 택해서 다음은 빌라로 이사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를 배려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지만, 아이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든다"며 "본청약 시점은 언제고 분양가는 얼마인지 LH가 책임을 지고 미리 제시한다면 그에 따라 대비할 텐데, 지금은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한편 국토연구원은 '저출산 원인 진단과 부동산 정책 방향' 연구보고서를 통해 "자녀 출산에 주택 매매 및 전셋값이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집값 부담이 커지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의미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09~2022년 16개 광역지자체의 전년도 출산율, 주택 매매·전셋값, 초중등 사교육비와 이듬해 자녀 별 출산율 간 상관관계를 살폈다. 분석 결과 전국 기준 전년도 주택 가격은 첫째 자녀 출산에 30.4%, 둘째 자녀 출산에 28.7%의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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