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치 테러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를 보면서 민주주의 위기를 말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늘 상존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친절함은 잔인성과 연결돼 있다고 한다. 친절함은 친절함만으로, 잔인성은 잔인함만으로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고통받는 아이를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모두 한때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된 적이 있었다. 사람에게는 연민과 공감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을 진화를 통해 획득해 왔다. 하지만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돼 있다고 한다. 친절함과 잔인성은 같은 뇌 부위에서 모두 일어난다.
옥시토신은 엄마곰 호르몬이라고 한다. 포용 호르몬, 사랑의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엄마가 아기를 분만할 때 흘러넘치기도 하지만, 누군가 자기 아기를 위협한다고 느낄 때 분노를 치솟게 만들기도 한다.
로봇 연구가인 일본의 모리 마사히로는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인체형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질수록 우리는 로봇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하거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이르면 으스스한 느낌을 주면서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눈인사를 하는 것이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그렇게 하지 않았다. 친절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험을 축적하면서 미국사람들은 왜 낯선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땅이 넓은 곳에서 총기가 허용된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위협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서로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친절함과 무서움이 공존하는 곳에서 하나의 문화적 소통법이다.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가 최악의 정부 형태임을 인정하면서 '나머지 모든 정부형태를 제외하면'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에서 이런 '인간 본성의 결함'을 간파하고 보완하려고 했다. 민주주의는 완벽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민주주가 미국의 민주주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양극단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뉴트 깅리치라는 전투적 스타일의 보수정치가가 하원의장이 되면서부터라는 지적이 많다.
깅리치는 '신질서가 구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며 공화당과 민주당을 영원한 원수 관계로 만들겠다고 작심했다. 그는 민주당 원로들을 화나게 만들 독설과 욕설을 내뿜었다. 언론매체는 자극적인 공격을 대서특필했다. 깅리치는 또 양당 의원들 간 교류의 싹을 잘라버렸다. 깅리치는 의회 근무일을 아예 주 5일에서 3일로 단축해 자당 의원들이 워싱턴이 아닌 지역구에 오래 머물도록 했다.
미국 진화인류학자가 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조 바이든과 존 매케인 상원 의원 간 일화가 적혀 있다. 바이든은 "존과 나 둘 다 상대 당으로 건너가서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눴는데 양당 지도부가 그걸 칠책하더군요. 논쟁 중에 그런식으로 친한 티를 내면 어쩌자는 거죠. 1990년대 깅리치 혁명 이후의 일입니다. 지도부는 우리가 같이 있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뀐 겁니다." 깅리치가 미국 민주주의에서 트럼프 탄생의 씨앗을 뿌렸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민주주의는 우리의 다정한 본성 속에 자리한 이 어두운 면을 견제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같은 편에게는 다정했던 사람이 다른 편에게도 잔인해지는 인간 본성의 역설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셜미디어 등장은 이런 민주주의의 위험요소를 더 자극시키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소통하고, 자기 신념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주는 언론만 골라 확증편향의 세계를 자꾸 구축해 나간다. 어쩌면 인간의 뇌가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진화하는 뇌는 갈수록 보수화된다고 한다. 정보과다에 빠지면 뇌는 너무 힘들어져 이기적인 뇌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 정치는 혐오를 덜어내는데 힘써도 모자랄 판인데 오히려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양당 간 타협은 커녕 대화조차 없다. 최소한 양당 지지층을 각각 만족시키기 위한 법안 주고받기 관행도 정치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뉴트 깅리치 현상'이 한국에서 정점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정치 테러에 대한 근본 해법은 없다. 그러나 예방할 수는 있다. 정치인 간의 교류와 여당과 야당 간 활발한 대화이다. 지금의 근본도 없는 민주주의를 바꿔야 한다. 그러나 이 글 결론을 맺어놓고 공허한 것은 별무소용(別無所用·별로 소용이 없다)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goodwill@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2년 전 울산 다방 여주인 살해 범인은 '그 손님'
- 유인태 "한동훈이 尹직계, 이재명이 친명 공천? 3지대는 돌풍"
- 천하람 "한동훈 효과 없애버릴 것…세련된 尹에 불과해"
- 어반자카파 박용인, 불구속 기소에 "버터맥주, 소비자 오인 의도 無"
- 경복궁 '낙서테러' 복구 최소 2천만원, 비용은 누가?
- 대법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 주식, 한앤코에 넘겨야"…최종 패소
- 한동훈 "불합리한 격차 줄이자"…말하자 위원들도 한 목소리
- 송영길, 6일 구속 만료…檢, 금명간 '돈 봉투' 기소할 듯
- 세종 2곳서 30여대 '쾅쾅쾅'…블랙아이스 때문인듯(종합)
- 美, '이란 폭발' 관련 "미국도 이스라엘도 관련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