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워크아웃]증권업계로 번지나…우발부채 '촉각'
대형사 중심…자기자본 대비 미미한 수준
유동화시장 위축시 우발부채 현실화 가능성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 신청에 증권업계도 긴장 모드다. 회사에 직접 자금을 빌려준 곳 뿐 아니라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채무보증을 선 곳들도 손실 위험에 노출된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익스포져 규모는 증권사 자기자본 규모에 비해 크지 않다. 당장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압박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긴장을 완전히 늦추긴 이르다는 경고도 나온다. 2년 전 레고랜드 사태 때처럼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경우, 증권사들의 우발부채 위험이 현실화할 수 있다. 우발부채는 당장은 부채로 잡지 않지만,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증권사에 상환 의무가 발생한다.
태영건설 익스포져 1.1억원...자기자본 대비 크지않아
4일 신용평가사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태영건설 부동산 익스포져는 약 1조1000억원 상당이다.
태영건설에 대한 직접대출은 약 2200억원으로 추정된다. 태영건설이 제출한 분기보고서와 한국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증권은 300억원의 자금을 직접 빌려줬다. 한양증권은 100억원 어치의 CP를 매입하는 형태로 대출을 시행했다. 다만, 이후 매각(셀다운)해 현재는 남은 대출액이 없다. 이밖에 미래에셋증권과 현대차증권, 대신증권 등도 대출을 집행했다. 태영건설이 본사 사옥을 담보로 발행한 유동화단기사채에도 자금을 댄 곳들이 있다. KB증권은 1000억원, 하나증권은 300억원 어치의 신용공여를 제공했다.
아울러 태영건설이 시공사로서 책임준공이나 자금보충을 약속하고 증권사가 보증을 선 PF 규모는 9200억원으로 추정된다.
건물을 지어올릴 때 시행사는 은행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한다. 은행이 갖고 있는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자산유동화어음(ABCP), 자산유동화단기전자사채(ABSTB) 등 유동화증권을 만들어 기관 등 투자자에 매각하는데, 이때 증권사는 차주인 시행사가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해 보증을 서준다.
증권사의 채무보증은 크게 매입보장, 매입확약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매입보장은 만기 1~3개월 짜리 유동화증권이 유통되지 않을 경우 증권사가 이를 매입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매입확약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시행사가 PF 대출을 갚지 못할 때 증권사가 대출금을 대신 갚아야 한다. 자금보충이나 대출채권이나 사모사채 인수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신용을 공여한다. 매입보장에 비해 증권사가 챙길 수 있는 수수료가 많아 대부분 매입확약 형태를 선호한다.
1월 2일 기준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PF딜 중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교보증권, 현대차증권 등이 사모사채 인수 확약이나 대출채권 매입 확약을 맺은 상태다.
다만, 현재까지는 태영건설 관련 익스포져(위험 노출 금액)가 당장 재무건전성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익스포져에 노출된 증권사들은 대개 자기자본이 큰 대형사이기 때문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증권사의 태영건설 관련 부동산개발 사업장 익스포져 중 초대형사의 익스포져가 69%로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태영건설 관련 익스포져가 커버리지 증권사 전체의 부동산 익스포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9%로 크지 않다. 자기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1.2%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익스포져를 보유한 증권사의 작년 9월말 평균 자기자본 규모가 3조5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자기자본 대비 부담은 대부분 2~5% 내외로 미미한 편"이라고 봤다.
'레고랜드 사태' 트라우마, 우발부채 관리 '촉각'
문제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여파로 ABCP, ABSTB 등 PF 유동화증권 시장 전반을 억누를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자, ABCP 금리는 8%까지 뛰고, 만기에 도달했을 때 차환발행이 되지 않는 등 수요가 확 꺾인 모습이 나타났다. 차환발행이 막힐 경우, 채무보증을 선 증권사가 이를 떠안아야 한다.
매입확정이나 매입확약 규모는 증권사에게 당장 발생하는 부채는 아니지만, 일정 조건에 해당하면 재무상태표의 부채로 올라갈 수 있다. 증권사가 보유한 우발채무 대부분은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25곳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비중 평균은 48.8%로 집계된다. 전분기 대비 4%포인트, 전년동기와 비교해서는 13.9%포인트 내려갔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보면 우발채무가 자기자본의 80~90%를 차지하는 곳도 상당하다. 메리츠증권이 97.8%로 가장 높다. 전기대비 13.7%포인트 증가했으며 1년 전 보다 4.4%포인트 늘었다. 대신증권(86.4%), 하이투자증권(81.4%), KB증권(81.3%)은 80%를 웃돈다. 한화투자증권(69.9%), IBK투자증권(68.2%), 한국투자증권(66.3%), 유진투자증권(64.3%), 신한투자증권(60.8%), 이베스트투자증권(57.6%) 순으로 뒤를 이었다.
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1실장은 "증권사 우발부채의 상당부분이 PF ABCP로 구성된 가운데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으로 인해 PF ABCP 차환실패 등 우발부채 현실화 위험과 단기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단기자금시장 추이와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대응여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로 중소형사들이 우발부채 규모를 줄이고 있어 충격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자기자본이 작은 회사들에게는 우발부채가 실제 채무로 돌아서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기가 돌아오는 ABCP의 금리의 변동성이 커지는 등 자금조달 비용자체가 늘어나게 되는 부정적인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둬야한다"고 덧붙였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