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역습은 팬데믹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겨레 2024. 1. 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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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현의 커넥션] (16) 문명의 대가
바이러스 입자는 증식 가능한 숙주를 스스로 찾아갈 수 없다.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건 사람이다. 픽사베이

“우리 대신 자연이 인구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 데이비드 애턴버러 (1926 ~현재) -

자연 다큐멘타리 해설로 유명한 애턴버러는, 인구 증가가 본격화하면서 자연 환경에 일어난 변화를 직접 목격해 온 생물 분류학 전문가다. 그의 말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견해가 아니다. 지구에 속박된 자연은 무한대가 아니기에 인구 증가는 계속 유지될 수 없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인류는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이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다. 팬데믹의 골든타임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앞에서 확인하였다. 그럼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왜 국가별 피해에 큰 차이가 났는가? 왜 변이는 계속 등장하였는가? 왜 서양의 피해가 더 컸는가? 떠오르는 여러 질문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은 팬데믹이 발생한 이유일 것이다. 모두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팬데믹은 왜 발생했는가?

2020년 1월23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사태의 심각성이 확인되자 우한에 대한 강력한 봉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는 이미 세계 감염자 수가 일주일에 두 배씩 증가하는, 물은 엎질러진 상황이었다. 만약 사람들의 국가 간 이동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면 이 봉쇄는 임계전이 이전에 이루어진 시기적절한 대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항공 산업이 발달한 세계화 시대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세계 각국을 오간다. 세계화 시대에는 바이러스도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이다. 봉쇄의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호흡기 세포에 숨어서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상황을 바라보던 각국이 자기 마당에도 불길을 번지는 중이란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팬데믹은 바이러스와 사람 집단의 상호작용 결과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는 오직 자기 유전자 복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현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 입자는 아무리 많아도 서로 소통하지 않으며, 입자 하나하나가 자기 복제를 위해서 무한 경쟁을 한다. 한 세포에서 같이 복제되어 태어난 바이러스 입자들도 형제자매 따위의 개념은 없고 모두가 경쟁자일 뿐이다. 바이러스 입자의 앞에는 숙주 감염에 성공해 자신을 복제하거나, 실패해 영원히 소멸되는 두 갈래의 길만 존재한다. 그 운명은 오직 접촉한 세포에서 증식이 가능한지 아닌지로 결정된다. 팔다리가 없는 무생물에 불과한 바이러스 입자는 증식 가능한 숙주를 스스로 찾아갈 수 없다. 움직일 수 없는 바이러스를 대신해서 퍼트리는 것도 사람이다.

혼자 살아간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일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픽사베이

인구 증가는 바이러스 숙주의 증가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일은 없다. 최소한 두 명 이상이 같은 공기로 숨을 쉬어야 바이러스에게 기회가 생긴다. 따라서 사람들이 서로 연결을 끊으면 바이러스 전파는 간단하게 차단된다. 팬데믹 초기에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우한을 76일간 봉쇄를 하자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극단적 봉쇄에는 백신도, 치료제도, 심지어 검사도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집안에서 두 달만 버티면 바이러스는 소멸된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과학적 이상일 뿐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우리 일상은 수많은 타인과 접촉으로 가득하고 모든 것이 전파의 연결고리다. 출입문을 용접해버리는 수준으로 시행된 우한의 강력한 봉쇄조차 바이러스 소멸에 석 달 가까이 걸렸다. 그리고 봉쇄를 해제하자 다른 지역에서 다시 바이러스가 유입되었다. 이를 통해 과학과 현실은 다르며, 강력한 봉쇄조차 바이러스를 간신히 통제하는 수준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서 완벽하게 격리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생물인 바이러스 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연히 숙주 세포와 접촉한 기회를 잡는 것이다. 사람의 호흡기 세포에만 찰싹 달라붙는 기능만 있는 단순한 스파이크 단백질에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인종 불문 단일 생물종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현생 인류의 조상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에서 세계로 걸어 나온 정도의 천명 내외의 집단으로 줄여진다. 코로나19의 표적은 스파이크가 들러붙을 수 있는 세포를 가진 이들의 후손이다. 천명이 천만이 되는데 6만5000년, 여기서 일억까지 5000년, 여기서 십억까지 1000년, 그리고 여기서 팔십억이 되기까지 불과 220년이 걸렸다. 문명 발전과 함께 가속화한 인구 증가는 말 그대로 폭증 단계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자기 유전자를 늘릴 수 있는 신세계가 펼쳐진 셈이다. 그러니 야생 동물을 숙주로 하던 바이러스가 틈만 나면 인간으로 흘러넘쳐 들어오는 것은 자연 현상이다.

항공 운송 시대는 사람뿐 아니라 바이러스에도 날개를 달아줬다. 픽사베이

문명이 오히려 바이러스에 좋은 환경 조성

인구 증가의 대표적 계기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의학혁명이다. 농경문화는 인류 문명의 시작임과 동시에 인구 증가의 원동력이다. 사람도 동물이라 먹어야 살 수 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먹을 음식이 없으면 인구 증가는 일어나지 않는다. 농경문화가 시작되면서 세계 인구는 천만 정도로 급격히 늘어난다. 하지만 전염병도 이때부터 창궐하기 시작한다. 농경을 위한 정착과 집단화는 병원체 전파를 촉진하는 환경 변화기 때문이다. 문명 발전의 부작용이 전염병인 셈이다.

본격적인 인구 폭증은 산업 혁명과 의학 발전으로 시작된다. 특히 의학은 인구 증가를 억제해왔던 감염으로 인한 사망문제를 해결한다. 항생제 발견으로 세균성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예방접종의 발전으로 바이러스로 인한 영유아 사망률이 극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그 결과 인류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한다. 세계화가 싹트기 시작한 20세기 중반 과학자들 사이에는 전염병의 완전 정복이 멀지 않았다는 자신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는 생태계라는 거대한 굴레에 속박된 인간의 숙명을 간과한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인구 증가로 인해 변화된 새로운 환경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전염병을 유행시키기 시작하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람들의 이동 범위도 넓혀왔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의 천리는 영남에서 한양까지 거리다. 과거의 공무원 시험이라 할 수 있는 과거를 응시하려면 보름동안 걸어야 했던 것이 불과 백여년 전이다. 산업화 이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자기 지역을 벗어날 일이 없었다. 무역상이 되거나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면 다른 지역 사람을 볼 일이 없었다. 이런 시절에는 숙주의 긴 이동시간 동안 버틸 수 있는 세균이나 소화기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주로 유행하였다. 살아 있는 감염자만 옮길 수 있는 호흡기 바이러스는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없었다. 이동을 하는 중간에 감염자가 완치되거나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선박과 철도의 발달로 인해 이동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모두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진다. 이런 환경 변화로 호흡기 바이러스는 팬데믹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거기에 항공 운송 시대에는 바이러스도 날개를 달았다. 이제는 동남아 동굴 속의 바이러스가 지구 반대편 뉴욕 도심으로 하루면 날아가는 세상이다. 거기에 상하수도, 엘리베이터, 전기 공급망의 발전으로 도시 위주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구의 밀집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음식이나 물의 위생이 계속 개선되어도 공기의 질은 악화되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호흡기 바이러스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인구 급증과 식량의 산업화는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켰고, 이는 야생 동물의 바이러스와 인간이 접촉할 확률을 증가시켰다. 픽사베이

생태계를 한계까지 몰아붙인 인류 문명

인구 증가로 인해 늘어난 식량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이 산업화된다. 그리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식량은 세계 자본시장의 상품이 되었다. 식량은 국제 무역을 통해 생산비가 싼 국가에서 대량 생산되어 생산비용이 비싼 국가로 공급되기 시작한다. 이런 세계화를 통한 식량 생산의 효율성의 재분배는 생필품인 식량 가격을 낮추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이는 인류의 관점이고 지구 생태계 관점에서는 파괴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세계 무역의 식량 상품화는 과잉 생산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지역 중심으로 식량이 생산될 때는 수요 공급이 적절히 유지될 수 있지만, 국가 단위로 생산되어 유통되는 과정에서는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생산 효율을 극대화시켜 가능한 많이 생산하고 폐기하는 식으로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균형의 기준은 식량이 아니라 식량의 가격이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숲과 초원을 밀어 경작지를 만들고, 가장 효율성이 좋은 작물만 골라서 재배하였다. 동일한 이유로 공장식 축산업이 도입되고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명을 둘러싸고 있는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 감소가 일어났고, 이는 야생 동물의 바이러스와 인간이 접촉할 확률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일단 인간으로 건너온 바이러스는 문명 환경에서 신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급속하게 전파가 된다.

지구 생태계는 반복되는 멸종과 진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생태계 환경이 유지되는 동안 생물들은 적자생존의 경쟁을 통해 진화한다. 그리고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 생태계의 지배종이 된다. 하지만 지구 환경이 변덕을 부리면 지배종은 멸종의 위기에 몰린다. 이전 환경에 최적으로 진화한 지배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 진화는 일방 통행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성공 전략이 환경 변화로 인해 순식간에 실패의 원인이 된다. 결국 지배종이 멸종하고 나면 생태계는 무주공산이 되고, 살아남은 생물들은 폭발적인 진화 경쟁을 다시 시작된다.

고생대의 양서류, 중생대의 파충류, 신생대의 포유류는 이전 시대 지배종의 멸종을 기회로 삼아 진화했다. 환경 변화로 이전 생태계를 지배했던 생물이 사라지면, 살아남은 생물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살아남은 종들은 이전 지배종이 독식하던 생태계 자원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진화 경쟁을 벌이고, 여기서 새로운 지배종이 다시 탄생한다.

이처럼 멸종은 당대의 생태계를 지배하는 생물종이 겪어야 할 숙명이다. 현재 생태계는 지구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최강의 단일종이 지배하고 있다. 인류 문명은 과학의 힘으로 자연의 도태 압력을 극복하며 번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와 생태계의 한계까지 도달한 문명은 생태계와 지구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왕관을 쓴 머리는 편히 쉴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문명의 대가였다. 그리고 자연은 우리에게 더 큰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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