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보리밥 드시고 방귀는 몇 번 뀌셨어요?”

박미향 기자 2024. 1. 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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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정관 스님 수행 일지
정관 스님이 만든 도라지고추장조림.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이란?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산사의 밤은 잘 만 김밥 같다. 검은 어둠이 사찰을 온통 감싸고 있어도 그 어둠을 조금만 거둬내면 생각지도 못한 ‘맛’을 발견한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 부속 암자 천진암의 그 날 밤도 그랬다.

이 암자에는 정관 스님이 머문다. 그는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시즌3(2017)에 출연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찰음식 대가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 해외 수많은 매체가 그의 음식 철학을 소개했다. 세계적인 요리사들이 그와의 만남을 소망하며 줄을 선다. 그는 18살에 출가해 대구, 전남 영암 등 여러 사찰에서 수행했다. 자연스럽게 각 지역 식재료와 그곳의 전통 음식을 익혔다.

정관 스님이 천진암 대웅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지난해 11월20일 밤 10시. 별조차 무색할 만큼 어두운 그 밤에 그를 만났다. 그의 곁에는 다음날 열린 김장 행사를 돕기 위해 모인 제자 15여명이 있었다. “음식은 생명입니다. ‘음식’을 통하지 않으면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지요. 내 몸을 살리고, 정신적인 의지를 키워가며 ‘나’에게 ‘내’가 있게 하는 것이 음식이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에너지도 음식을 통해 생깁니다. 사찰음식은 음식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발견하는 수행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찰음식 정의는 간명하다. 음식이 사람 몸에 들어가지 않으면 에너지가 생기지 않고, 에너지가 없으면 사람은 아무 일도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온전한 음식을 섭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사찰음식은 그 일에 앞장서는 수행식이라는 것이다.

정관 스님이 만든 표고버섯조림. 박미향 기자
호박 등 각종 재료가 들어간 국수. 박미향 기자

이어 스님의 말씀이 계속됐다.

“과학물질 문명이 발달하면서 ‘먹는 것’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발전도 하고 건강을 해치는 방향으로도 가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을 만드는 데)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맞는 식재료란 ‘기본’과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조리한다는 ‘원칙’은 그가 마음에 늘 새기는 신조다. ‘기본’과 ‘원칙’은 혼탁한 지금 세상살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한편 제자 중의 한 명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스님은 사찰에서 처음 커피를 끓인 분이에요.” 지금은 강릉 등에 ‘커피 템플스테이’ 사찰이 있을 정도로 ‘스님 커피’는 익숙한 음료지만, 정관 스님이 출가한 1970년대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스님이 차를 마시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겼던 시절이다.

“처음 출가했을 때 큰 스님이 ‘차를 끓여 와라’ 하면 고생 좀 했어요. 전라도로 김밥 싸 들고 찻잎 구하러 가곤 했어요. (손을 펴 보이며) 요만큼 구해와 차 끓였는데, 차 도구도 없던 시절이라 숯불에 볶고 대나무 망에 거르고 했죠. 어느 날 공양간에 들어가니 시퍼런 깡통이 하나가 있더라고요. 가루 같은 게 보여서 그냥 끓였는데, 그 찌꺼기 향이 고소하고 이전에는 맡아 본 적 없는 향이었어요. 그게 원두 가루였어요.” 큰 스님도 원두 가루인지 모르고 그저 “누가 놓고 갔다”고만 했다고 한다. 그는 “70년대 중반이니, 사찰 커피는 내가 제일 먼저 만든 게 맞을 거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정관 스님이 음식 준비를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박미향 기자
정관 스님이 고구마를 들고 있다. 박미향 기자

깊은 밤, 어디선가 적막을 깨는 낭창한 새소리가 들렸다. 스님의 말이 ‘맞다’고 조응하는 듯했다. 스님은 18살 때로 돌아갔다. 그 시절 밥 짓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밥은 한국인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제자들은 더욱 귀를 쫑긋 세웠다.

“새벽 3시에 예불하고 바람이 성성 들어차는 겨울철 공양간에서 장작불 지피고 밥 안치는 일은 정말 고된 일이죠. 스님들이 ‘오늘 밥은 질다, 되다’며 타박을 하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고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시는 스님들 타박에 움츠러들지 않고 출가한 지 1년 반 만에 방법을 찾았다.

“가마솥에 넣은 쌀 높이를 (위치별로) 좀 달리했지요. 가마솥은 크니까, 가운데와 가장자리 높이가 다르잖아요. 그것에 맞춰 쌀을 넣은 거죠. 어디는 물이 더 스며들고 어디는 덜 스며들게 되니, 진밥과 된밥이 같이 되는 거예요. 밥을 담을 때도 섞지 않고 따로 퍼서 올렸지요. 한 솥에 3가지 밥을 한 셈이죠. 스님들이 박수를 치시면서 놀라셨어요.”(웃음)

섬세한 조리 기술 연마는 멈출 줄 몰랐다. 그는 발우공양할 때마다 스님들에게 물었다. “스님, 이번에 보리밥을 했는데, 방귀는 몇 번 뀌셨어요? 시래깃국에 들어간 된장 냄새는요? 제피 넣어봤는데 어떠셨어요?”라고 말이다. “그렇게 자기만의 것이 쌓여간 거죠.”

구운 연근. 돌배조림과 함께 ‘잣즙 샐러드’의 재료로 쓰인다. 박미향 기자
돌배조림. 박미향 기자

스님은 제자들에 향해 말했다.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이 내 것이지. (아무리 훌륭한) 레스토랑 셰프 레시피라도 그것은 ‘남의 것’이야. 그 레시피대로 아무리 해도 그 맛이 안 나.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지. 그러려면 식재료가 어떤 토양에서 어떤 시절 인연을 만나 자라고 성장하는지, 언제 먹으면 제일 좋고 어떤 양념을 만나야 하는지, 삶을 것인지 데칠 것인지, 이런 거를 해야 하는데, 이건 자기 에너지에서 나와. 본래 모든 것은 ‘나’로 인해서 되는 거야.”

그는 기후위기 시대의 밥상 걱정도 했다. “지구가 고통받고 있잖아요. 기후위기 극복해야죠. 자연농법 해야 합니다. 자연의 이치, 순리에 맞는 음식과 ‘내’가 있어야 해요. 그런 것들이 역행하니 지금 이런 시대를 맞고 있는 겁니다.”

정관 스님이 지난해 11월21일 천진암을 찾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그가 말하는 ‘이런 시대’에는 하루에 35명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가 있는 한국이 있다. 그는 사찰음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사찰음식은 내 몸에 들어오는 음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살피는 수행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행위를 할 때 온전히 빠져들어야 해요. 음식을 만들 때도 자기를 온전히 넣어야 하는 거죠. (음식이 완성되는 꼴을 보면서) 성취가 늘어날수록 만족감이 생기고 자유로워집니다. 서서히 치유가 돼요. 병든 마음도 자유롭게 놓을 줄도, 다스리는 법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나에게 집중하기에) 견줄 대상이 없는 상태가 되죠. 마음의 병을 고치게 됩니다. 타인과 견주는 데서 마음의 병이 생깁니다.”

지독하게 깊은 사찰의 밤이 베어 물은 김밥 한 입처럼 더없이 맛나게 익어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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